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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돼지가 나는 날이 올까? / 류재훈

등록 2007-01-11 16:48

 류재훈 워싱턴 특파원
류재훈 워싱턴 특파원
편집국에서
“돼지가 날기 전까진 어림없다!”

미국 국무부의 마지막 네오콘(신보수주의자) 로버트 조지프 군축·비확산 담당 차관이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경수로 제공 논의를 두고 한 말이다. 미국에서 ‘돼지가 날 때까지’라는 말은 불가능한 일을 가르키는 관용구다.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속담에서 나온 말이지만 동화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서 이 표현이 쓰인 뒤 일상화됐다. 미국의 말을 듣기 전에는 경수로는 절대 줄 수 없다는 얘기다.

13개월 만에 어렵사리 열린 지난해 12월 6자 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이 요구한 초기 이행조처에 응답하는 대신 방코델타아시아의 금융제재 해제를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며 공동성명의 비핵화 공약 이행 협의조차 거부했다. 북한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핵무기와 핵계획을 분리하는 새로운 논리까지 들고나온 모양이다. 김일성 주석의 ‘비핵화’ 유훈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얘기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기대 섞인 해석’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새해 들머리 북-미 사이의 접점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핵실험을 “미국과 핵대결에서 통장훈(외통수)”이라며 핵실험 이후 국제정세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형성되어가고 있다고만 보는 한, 돼지는 절대 날 수 없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남북 비핵화 합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항상 ‘민족공조’를 앞세우는 북한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결국 남한이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도록 궁지로 몰아 ‘민족공조’를 허물고 오히려 미국 주장만 강화시키는 자가당착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돼지는 더욱 날 수 없다. 만약에 북한이 자기 체제 유지만을 위해 상황 악화를 내심 바라고 있다면 민족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2007년 12월 한국 대선, 2008년 여름 베이징 올림픽, 2008년 11월 미국 대선 등을 감안하면 북핵 협상을 위한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북한의 태도는 이라크전으로 궁지에 몰린 조지 부시 행정부가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차기 정부와 협상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승리에 특별한 기대를 걸고 있다면 오산이다. 대선까지 2년 남짓 남기고 있지만 현재 여론조사에서 선두주자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다. 그는 ‘제네바 합의’를 이끈 로버트 갈루치 대사를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대북 초강경파다. 당사자인 갈루치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장은 “다음 선거에서 과연 민주당 대통령이 당선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지금 부시 행정부와 진지하게 협상을 벌일 수도 있다”며 북한쪽에 차기정권으로 협상을 미루지 말라고 충고했다.

민주당의 북핵 인식이 공화당보다 유화적이라는 것도 근거가 없다. 오히려 북핵 문제에서 훨씬 원론적인 민주당은 직접 담판에서 ‘당근과 채찍’ 중 분명한 답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6자 회담을 지켜 본 민주당 쪽의 한 핵전문가는 “경제적 지원도 받고, 핵보유도 인정받으려는 것”이라며 극도의 대북 불신을 나타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최근 낸 <하드파워>에서 차기 민주당 대통령에게 “협상이 실패하면 강제 행동을 선택하는 건 자연스런 것”이라며 “군사적 옵션을 테이블에서 내려놓아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많이 듣던 얘기를 민주당 쪽 인사들도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의 미국 민주당 짝사랑은 책상물림의 정세분석일 뿐이다.

6자 회담이 ‘회담을 위한 회담’으로 시간끌기에만 이용된다면 현재 워싱턴 일각에서 얘기되는 6자 회담 무용론은 그 세를 더해갈 것이다. 북핵 교착상태에서 상황 악화는 필연적이다. 워싱턴에서 맞는 우울한 새해 느낌이다.


새해 초 ‘플라잉 피그’를 인터넷에서 찾다가 ‘나는 돼지 장난감’을 발견하고, 인터넷으로 구매해 고향의 어린 조카에게 새해선물로 보냈다. “나는 돼지가 신기하다”는 조카의 말처럼, 새해 한반도 하늘에도 불가능에 도전한 황금돼지가 힘차게 날아올랐으면 좋으련만 ….

류재훈 워싱턴 특파원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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