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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사요나라 도쿄 / 박중언

등록 2007-01-28 18:00

박중언 /도쿄 특파원
박중언 /도쿄 특파원
편집국에서
연초에 한 일본인의 집을 방문했다. 작별 겸 새해 인사를 위해서였다. 올해 여든인 이쿠다 할아버지는 1999년 내가 일본에 연수하러 왔을 때 자원봉사로 일본어를 가르쳐준 분이다. 그는 중소기업 인력난으로 77살까지 공장에서 기계를 만졌다. 그러면서도 틈을 내 봉사활동을 해 왔다. 노인성 질환에 시달리는 요즘도 일요일이면 부근 공원의 전통가옥 전시관에서 봉사한다. 그는 고이즈미·아베 정권에 무척 비판적이다.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며, 우경화하는 일본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쿠다와 같은 성실한 일본인들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의 자발적 참여와 쌈짓돈으로 움직이는 풀뿌리 단체들은 일본 전역에 널려 있다.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9조의 모임’은 지역·분야별로 5천곳 넘게 조직됐다. 시민운동의 두 다리가 튼실한 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우선 이들을 묶어세우고 이슈를 제기해 나가는 전국 단위 시민단체가 거의 없다. 대규모 집회나 시위도 가뭄에 콩 나듯 한다. 게다가 일본 주요 언론의 보도 태도는 ‘푸대접’을 넘어 무관심이다. 드물게 열리는 시민단체들의 큰 행사도 사회면 단신이 고작이다. 언론과 시민세력이 어깨를 겯고 변화를 모색하는 우리와는 판이하다. 한국의 시민세력은 여전히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한다. 영향력에 견줘 기초가 너무 취약하다는 점이 해묵은 과제다. 시민세력이 일본에선 존재감이 미미해 문제인데, 한국에선 머리가 웃자란 가분수형이어서 탈이다.

일본 시민세력의 기능 부전은 기존 질서에 지나치게 순응하는 국민성과 더불어 사회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핵심 요소다. 일본인들은 비교적 자기 만족도가 높고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분수’를 너무 잘 아는 편이다.

한번은 일본 민영방송 오락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가슴확대 수술로 떼돈을 버는 여성 성형의사의 사생활을 다룬 것이었다. 그가 ‘한번 입은 옷은 다시 입지 않는다’는 게 화제였다.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돈질’을 뽐냈고, 진행자와 참석자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만약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시청자 등의 돌팔매로 프로그램이 문닫을지도 모르고, 감히 만들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게 일본에서 가능한 것은 다른 사람, 특히 힘있는 계층은 자신들과는 뿌리부터 다르므로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보통 일본인들의 인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순응 또는 체념하는 태도는 사회의 안정성 유지와 숨막히는 경쟁의 완화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 시민혁명의 부재나 보수 자민당의 장기집권과 같은 일본 사회 정체의 근본 원인이 있다.

이와 달리 한국 사회는 역동성이 흘러넘치는 게 흠이다. 식민지·분단·전쟁·군사독재 등 뒤틀린 한국 근대사는 언제나 권력과 부의 정당성을 의심받게 만들었다. 이런 사실은 사회변혁의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남에 대한 불만을 앞세우게 하고, 가진 계층을 향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낳는다.

특파원 생활 3년을 접으면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서로 대조적인 모습은 보완·교정을 통해 얻을 게 많은 관계임을 말해준다. ‘윈-윈’을 위해선 좀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인들은 일본을 우습게 아는 버릇을 버리고 적대적 경쟁심을 줄였으면 한다. 일본인들은 과거사를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대등한 동반자로 성장한 한국을 새롭게 바라보기를 기대한다.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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