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베이징 특파원
편집국에서
여수를 보면서 선양을 떠올렸다. 한국 전라도의 항도와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마는, 최근 그 두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묘하게 꼬리를 물었다. 여수에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불이 나 수감돼 있던 중국인 8명이 비명횡사했다. 선양에선 여관에서 한국행을 기다리던 국군포로 가족 9명이 중국 공안에 끌려가 강제북송됐다. 여수의 그들도, 선양의 그들도 모두 ‘불법체류자’였다.
선양 사건도 한동안 한국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국군포로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 여관에 머물다 북송되기까지 숱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런 일이 터지면 으레 그렇듯, 한국 정부는 뭐 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 정부 역시 늘 그랬듯 ‘할 말은 많으나 할 수는 없다’는 투로 일관했다. 여수 사건이 터지자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의 사후처리 과정을 주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국군포로 문제를 다루는 이들에겐 숙명 같은 것이다. 그들에겐 중국 정부이건, 한국 언론이건 누구에게도 공개적으로 상황을 설명할 권리가 없다. 마치 첩보영화의 주인공처럼 암암리에 움직이고, 몇 장의 보고서로 그 결과를 남길 뿐이다. 국군포로들은 엄연히 북한 국적을 갖고 있고, 중국에 들어서는 순간 불법월경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을 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선 중국과 북한 당국의 감시 사이에서 이른바 ‘공작’이 불가피하다.
선양 사건은 그런 비정상적 상황이 빚은 연속극의 일부다. 선양의 한국영사관은 탈북자의 진입을 막으려는 중국 공안에 포위돼 있다. 공안들은 그게 국군포로이든 납북자이든 탈북자들이 외국 공관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일차 임무는 탈북자들을 색출해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영사들은 공안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갖은 꾀를 짜낸다. 예전엔 탈북자들이 중국 여권을 위조해 영사관 안으로 직접 들어왔으나, 중국 공안들이 그걸 가리는 방법을 터득하는 바람에 호송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른바 브로커들의 탈북 장사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런 환경 탓이 크다.
이런 상황은 한국 외교에 적잖은 부담을 준다. 그것이 인도적 목적이든 정치적 의도이든 중국과 북한의 문제에 한국이 끼어든 셈이고, 이를 부드럽게 처리하기 위해선 어찌됐든 중국 정부의 ‘너그러움’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이들이 입버릇처럼 중국 정부의 협력을 운운하는 게 결코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탈북자 문제에서 중국 정부와 협상이란 없다. 오로지 한국 정부의 호소와 중국 정부의 관용만이 있을 뿐이다.
해결책은 국군포로 문제를 남북의 채널로 푸는 것이다. 여수 사건이 한국과 중국의 문제로 논의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남북은 이미 2006년 2월 제7차 적십자회담에서 “쌍방은 이산가족 문제에 전쟁시기 및 그 이후 시기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들에 대한 생사확인 문제를 포함시켜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대범한 조처를 취한다면, 남북협력기금을 통한 지원 등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할 수 있음을 표명하기도 했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과 동독도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이런 합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남북 이산가족들의 화상상봉마저 중단된 상태이니 그 단절이 크다. 마침 북한이 13일 끝난 베이징 6자 회담에서 핵 폐기와 상응조처의 첫 단계 이행조처에 합의했다.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에서도 이제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수 사건은 비극적이지만 선양 사건의 비정상보다는 가볍다.
유강문/베이징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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