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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일본취재도 내재적 접근 / 김도형

등록 2007-03-01 17:37

김도형/도쿄 특파원
김도형/도쿄 특파원
편집국에서
외국 생활이 다 그렇듯 새로운 경험과 발견의 연속이다. 지난 1월5일 도쿄 현지에 부임해 열흘 남짓 준비 기간을 거쳐 정식으로 특파원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못 되는 기간이지만, 일본이라는 사회를 새삼 곰곰이 생각해 볼 작은 만남들이 이어졌다.

그것을 한 가지 모습으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얼버무리자면 포착하기 어려운 일본의 다양한 얼굴을 대면했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우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본부터 얘기하자면 이런 것이다. 도쿄 지국사무실에 깔린 인터넷선을 속도가 느린 에이디에스엘(ADSL)에서 광통신으로 바뀌고 싶어 엔티티(NTT)에 문의했다가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려 포기하고 말았다. 건물주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공사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건물주의 허락을 받을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으나 절차가 그렇다며 뾰족한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엔티티와 관련된 것이다. 전임 특파원 이름으로 된 여러 대의 전화회선을 본인 이름으로 넘겨받으려고 절차를 물어보니 5천엔 넘는 수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시 뚜렷한 이유를 듣지 못하고 ‘거액’의 수수료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한 은행으로부터는 신용카드 발급이 거부됐다는 통보를 받고 곧바로 이유를 물어보니 그것은 이야기 해주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는 답만 전화상으로 흘러나왔다. 또다른 은행에서는 발급된 내 신용카드가 다른 은행에선 거부된 이유가 아직도 궁금하다. 커피전문점에서도 일본의 후진성은 발견된다. 커피 맛은 가격에 견줘 훌륭하지만 실내 공기는 한국보다 훨씬 나쁘다. 대개 흡연석이 설치돼 있지만 구분이 모호해 공기가 탁하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아직도 흡연자 천국이다.

그러나 작은 감동과 새로운 발견도 많이 접했다. 부임 초기 혼자 생활 때 일본식 냄비요리 전문집에 들어가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점장이 문밖까지 나와 배웅을 한다. 그리고 작은 비닐 우산 하나를 건넨다. 밖을 보니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마 전 이부키 분메이 문부과학상은 한 공개강연에서 “유구한 역사의 가운데서 일본은 줄곧 일본인이 다스려 왔다. 극히 동질적인 나라다”라고 말했다. 눈에 띄는 일본인들의 남다른 동질 지향성을 생각한다면 이부키의 발언은 크게 그르지 않다. 하나같이 허벅지 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 교복을 입어,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도쿄 여고생들의 옷차림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다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부키의 발언은 얼마나 단순화한 것인가. 짧은 취재과정이지만 배타적인 동질성보다는 일본사회의 다양한 사고와 유연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저축은 엄두도 못 내는 팍팍한 삶이지만 “남들도 잘사는 사회를 꿈꾸며” 사회운동에도 열심히 참가하다는 30대의 프리터(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일본의 젊은 사람) 미즈스나 준이나, 납치문제와 북핵문제 분리를 주장하고 일본 안의 과도한 내셔널리즘을 우려하는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 같은 이들을 만난 것은 즐거움이었다.

사실 ‘섬세하고 까다로운 이웃’ 일본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우리의 프리즘만을 고집하다간 우리의 초점은 엉뚱한 곳으로 향하기 쉽다.

몇겹씩 덫칠해진 화장발이 아닌 맨얼굴의 일본을 만나고 보여주는 일을 무엇보다 염두에 두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러자면 그들 안으로 성큼 들어가는 내재적 접근법도 필요할 것 같다. 북한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그것이 유용했다면 일본을 아는 데도 쓸모가 있지 않을까?


김도형/도쿄 특파원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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