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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신문 연재소설 삼국지 / 최재봉

등록 2007-03-04 18:27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편집국에서
신문 연재소설의 부활인가?

공지영씨가 지난 1일부터 〈중앙일보〉에 ‘즐거운 나의 집’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전남편 이아무개씨가 연재를 앞두고 법원에 연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세간의 관심이 쏠리기도 했으나, 연재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공지영씨의 소설 연재가 시작되기 전에 〈한겨레〉는 연초부터 황석영씨의 ‘바리데기’를 연재하고 있었다. 〈조선일보〉 역시 신경숙씨의 ‘푸른 눈물’에 이어 지난달 12일부터 김영하씨의 ‘퀴즈쇼’ 연재에 들어갔다. 황석영과 공지영, 그리고 김영하. 지금의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세 사람의 소설가가 신문 연재소설로써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신문 연재소설은 구한말 신문이라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거의 동시에 닻을 올렸다. 기록을 따르면, 최초의 신문 연재소설은 1896년 〈한성신보〉에 실린 ‘신진사 문답기’였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신문 연재소설은 본격 개화한다. 이인직의 〈혈의 누〉(1906), 이광수의 〈무정〉(1917), 염상섭의 〈삼대〉(1931), 홍명희의 〈임꺽정〉(1928~1939), 이기영의 〈고향〉(1933), 강경애의 〈인간문제〉(1934), 심훈의 〈상록수〉(1935), 채만식의 〈탁류〉(1937) 등 근대소설의 대표작들이 대부분 신문 연재를 통해 발표되었다. 해방과 전쟁 이후에도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 이문열의 〈변경〉 등으로 이어지면서 신문 연재소설은 꾸준히 독자와 호흡을 함께해 왔다.

그러나 문학잡지와 단행본을 통한 작품 발표가 늘고, 다른 읽을거리 볼거리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신문 연재소설은 점차 독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중앙일보〉는 1999년 12월31일치 기사에서 이날 마무리된 김주영씨의 〈아라리 난장〉을 끝으로 더는 신문 연재소설을 싣지 않겠노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문 연재소설 역사 속으로…’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결과적으로 ‘오보’가 된 셈이지만, 신문 연재소설의 쇠락세를 확인하게 하는 효과는 있었다.

그랬던 신문 연재소설이 지금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황석영, 공지영, 김영하 세 작가의 연재소설은 각자의 특장을 살리면서 한국 문학의 살을 찌우고 독자들을 즐겁게 해 줄 것으로 보인다. ‘바리데기’의 주인공 바리는 바야흐로 아시아 대륙을 탈출해 영국으로 향할 참이다. 한반도 이북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영국에 이르는 바리의 행로에는 민족의 아픔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의 음울한 이면이 아로새겨지게 된다.

‘퀴즈쇼’는 서울 홍대 앞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사랑과 삶을 발랄하게 그려 나가고 있다. 연재 이전부터 화제를 모은 ‘즐거운 나의 집’은 성이 다른 세 아이와 함께 사는 작가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삼은 작품. 싱글맘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저항하는 한편, 가부장적 가족 관계에 대한 일종의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재소설은 작가로 하여금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게 한다. 그 결과는 독자 쪽의 행복으로 연결된다. 문학 독자들 사이에서 읽을 만한 소설이 없다는 푸념이 나온 지는 오래되었다. 소설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떠나 일본 소설 쪽으로 이탈한 것 역시 한두 해 사이의 일이 아니다. 일급 작가들이 신문 연재에 나서고 그 결과가 속속 책으로 묶여 나온다면 한국 소설은 지금과 같은 극심한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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