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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이명박과 심상정의 공통분모? / 박용현

등록 2007-03-08 18:33

박용현/24시팀장
박용현/24시팀장
편집국에서
얼마 전 한 이웃돕기 단체가 보낸 전자우편 속에서 다섯살 재준이(가명)는 온통 까맣게 썩은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신경이 썩고 고름이 생기는 병이라는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가 아파요”라고 울먹인단다. 그런데 치료비 300만원이 없어 치료를 못한단다. 지하철에서 양말을 파는 부모는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호떡 장사까지 시작했단다.

<한겨레>는 지난해 어린이날을 즈음해 ‘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는 기획기사를 통해 어린이에게 무상의료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몸과 마음이 자라는 어린 시절만큼은 나라가 책임지고 동등한 보호를 해주자는 호소였다. 그러나 이런 제안이 얼마나 현실적 동력을 지닐지는 가늠이 잘 안 됐다. 당시 취재 결과 15살 미만까지 무상의료를 도입하려면 연간 1조9718억여원의 재정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세금을 조금만 올릴라치면 어김없이 ‘세금 폭탄’이란 섬뜩한 용어부터 들이대는 풍조 속에서, 이런 좌파적인 정책에 어떤 정치인이 선뜻 나설까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먼저 운을 뗐다. 지난달 서울의 한 구립 어린이집을 찾아간 자리에서 그는 다섯 살까지는 의료비 전액 무료화를 포함해 의무보육 시스템으로 돌보겠다고 공약했다. 여기에 3조원을 들이겠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은 나라가 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물론 이 전 시장은 ‘어린이의 권리’라든가 ‘무상의료 실현’이라는 이념적 차원이 아니라 ‘저출산 문제 해결’이나 ‘여성 경제활동 촉진’ 등의 실용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재원도 증세 대신 예산 절감에서 찾는다. 딱히 좌파적 접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도 분명 덧붙였다. “(재원 마련을 위해) 추가로 3조원 세금을 더 거둔다든가 빚을 낸다고 하면 선심성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게 해서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경부운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일 수도 있는 이 공약이 주요한 토론거리가 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 다른 대선 주자들의 생각은? 의료비 전액 무료화는 몇 살까지가 적당한가? 예산 마련 방안은? 그 타당성은? 왜 현 정부에서는 못하나?

마침 맞춤한 토론 상대가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 지난 7일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심상정 의원은 2005년 ‘우리 아이 무상의료·보육·교육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임산부 무상의료와 만 7살 미만 어린이의 무상 의료·보육 등에 드는 비용으로 이 전 시장과 비슷한 약 3조2천억원을 제시했다. 산출 과정을 비교해봄직하다. 재원 마련 방안은 서로 어긋난다. 심 의원은 직접세 강화와 국방비·경상비 절감 등을 제시한 반면, 이 전 시장은 예산 20조원을 절감해 이 가운데 3조원을 어린이들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다만 구체적 절감 방안을 밝히면 선거에 불리한 점이 있어 막판에 밝히겠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 문제로 토론을 벌일 수만 있다면, 누가 이기느냐는 상관없다. 직접적인 토론이 성사되지 않아도 역시 상관없다. 진보와 보수의 두 극단에 선 대선 주자들이 “어린이는 국가가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보편적 원칙을 대전제로 각자의 실행 방안을 내고 진지한 논의를 벌이는 그 자체로 선거판은 아름답다. 올해 대선이 이렇게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할 최소한도’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하나씩 이뤄가는 과정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박용현/24시팀장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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