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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비디에이(BDA) 괴물 / 유강문

등록 2007-03-29 18:38

유강문 /베이징 특파원
유강문 /베이징 특파원
편집국에서
요즘 중국엔 두 마리의 괴물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한 놈은 주로 오염된 강에서 사는데, 수시로 뭍으로 기어나와 먹잇감을 찾는다. 몰골이 흉측하고 식성마저 잔인한데도 구경꾼들이 길게 줄을 선다.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괴물〉이다. 다른 한 놈은 딴판이다. 돈더미가 쌓인 은신처에 똬리를 튼 이 괴물은 며칠 전부터 사냥꾼들이 기를 쓰고 잡으려 하는 데도 꼬리를 보이지 않는다. 바로 방코델타아시아(BDA)라는 괴물이다.

공교롭게도 두 놈 모두 미국에 의해 만들어졌다. 〈괴물〉은 미군기지에서 몰래 내다버린 유독성 화학물질을 먹고 자랐다. 비디에이 역시 미국 재무부가 불법거래라는 딱지를 붙여 동결한 북한 계좌에서 태어났다. 〈괴물〉이 어느 화창한 날 소녀를 잡아갔듯이, 비디에이는 2·13 합의 이후 열린 6자 회담을 낚아채갔다. 소녀를 살리려 가족들이 나선 것처럼, 6자 회담을 구하려고 참가국들이 소매를 걷어붙인 것 또한 비슷하다.

그러나 비디에이 괴물은 특수효과로 만들어낸 허구가 아니다. 한 외교관이 푸념한 것처럼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도 아니다. 미국이 ‘불법’ 딱지가 붙은 돈을 정상적인 금융망을 통해 북한에 공개적으로 넘겨준다는 발상은 정치적으론 가능할지 모르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이른바 ‘기술적 문제’란 정치적 합의가 국제 금융질서와 충돌하는 상황을 포장한 외교적 용어일 뿐이다.

미국과 북한이 합의한 대로 방코델타아시아 자금이 중국은행을 거쳐 북한으로 넘어가자면 반드시 뉴욕을 거쳐야 한다. 이 은행이 개설한 뉴욕의 은행 계좌에서 역시 중국은행이 개설한 뉴욕의 은행 계좌로 돈이 건네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돈을 손에 쥐는 것은 그 다음이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달러를 거래할 경우 지켜야 할 규칙이다. 미국은 이런 정교한 여과장치를 통해 검은돈이 달러 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통제한다.

하지만 이는 스위프트(SWIFT)라는 더 거대한 국제 금융망의 일부에 불과하다. 1973년 미국과 유럽의 주요 은행들이 창설한 스위프트는 검은돈의 공격으로부터 국제 금융질서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전세계 200여 나라의 7800여 금융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이 스위프트의 방대함과 촘촘함은, 지난해 6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이를 수시로 조회한 것이 들통나면서 드러난 바 있다. 스튜어트 레비 미국 재무부 차관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스위프트는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에서 매우 강력한 무기”라고 실토했다.

비디에이의 검은돈이 북한에 건네지는 것은 이런 국제 금융질서에 무슨 이유에서건 변고가 생겼음을 뜻한다. 심하게 말하면 돈세탁을 감시해야 할 시스템이 돈세탁을 허용하는 자기 부정에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디에이 자금을 받기를 꺼리는 중국은행의 태도는 이런 질서가 훼손당하는 것에 대한 국제 금융자본의 거부감을 반영한다. 중국은행을 대신할 제3국의 은행을 찾기 힘든 것도 결국은 이 때문이다.

비디에이 괴물도 영화 속 〈괴물〉처럼 제거될 것인가? 중국의 한 영화평론가는 〈괴물〉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누가 가장 강력한가 순위를 매겼다. 그의 채점표를 보면, 〈괴물〉에서 가장 힘이 센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괴물에 사로잡힌 소녀다. 죽음을 눈앞에 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이를 벗어나고자 최선을 다하는 소녀의 모습에 대한 찬사다. 여기에 빗대면, 비디에이 괴물을 이길 이는 결국 괴물에 납치된 6자 회담이다. 2·13 합의가 이행되는 것이 비디에이의 기술적 문제를 돌파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유강문 /베이징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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