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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이시하라 3선이 허용된 까닭 / 김도형

등록 2007-04-12 21:59

김도형/도쿄 특파원
김도형/도쿄 특파원
편집국에서
지난 7일 오후 6시 조금 지난 시각 도쿄의 대표적 번화가인 신주쿠역 동쪽 입구. 도쿄도 지사에 출마한 아사노 시로(59) 전 미야기현 지사가 “내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며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의 8년 도정체제를 심판하자고 호소한다. 그러나 1천명 가량의 청중들에서는 반응이 미지근하다. 아사노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파란 종이 깃발을 흔들며 반응을 보일 뿐 박수도 잘 터져나오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선거 유인물도 잘 받지 않는다. 20분쯤 지난 뒤 200m 가량 떨어진 신주쿠역 서쪽 입구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도쿄도지사 3선에 도전한 이시하라의 마지막 선거운동 현장으로 가는 길이다. 이시하라 지사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연단 주변은 벌써 인파들로 붐볐다. 어림잡아 아사노 후보 연설에 모인 청중의 두세 배는 되는 것 같았다. 30분쯤 이시하라 지사가 등장하자 청중들 여기저기서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 사진도 찍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은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좀더 솔직히 얘기하면 켕기는 기분 같은 게 있었다.

호화판 외유에다 아들을 도정사업에 끌어들이는 등 도정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에 부닥쳐 이사하라 지사의 3선은 쉽지 않다는 취지의 기사를 두 번이나 썼는데, 마지막 유세의 분위기는 기사 방향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저녁 8시 지방선거 직후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의 출구조사 결과는 50% 이상의 득표율로 일찌감치 이사하라의 낙승을 전하고 있었다. 4년 전 득표율 70%에서 51%로 크게 떨어졌다고 하지만 예상보다 압승을 거둔 것은 틀림이 없다.

결과적으로 오보성 기사를 쓰고 보니 현장에 근거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선거보도 자세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낀다. 관련기사를 쓰면서 외국인이나 사회적 소수자를 두고 혐오감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우익 중의 우익’ 정치인에 대한 거부감이 개입됐는지도 모르겠다. 선거기간에 반성한다며 내내 낮은 자세로 일관했던 이시하라 지사는 당선소감 때부터 “언론에 불공정한 몰매를 맞았다”며 금세 반성의 흔적을 없앴다. 그와 같은 정치인에게 3선을 허용한 일본정치에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지만 어쨌든 이시하라의 3선 배경을 냉정히 되돌아 볼 필요는 있다. 무엇보다 도덕적 문제보다는 실적과 강력한 힘을 희구하는 현재 일본사회의 분위기가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아시히신문> 출구조사를 보면, ‘선거공약과 정책’보다는 ‘후보자 개인의 자질과 매력’을 보고 표를 던졌다고 응답한 62%가 주로 이시하라 지사에 표를 던졌다. “나는 강한 부분이 좋다. 지금 총리와 비교해 힘있음을 느낀다.”(경비직 65살 남성) “대담한 발상이나 아이디어로 정치에 흥미를 갖게 한다. 전세계로 도쿄를 이끌어갈 지도력에 기대한다.”(주부 37살) “록폭기 지구 등 도쿄는 최근 몇 년 새 크게 발전했다. 결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금융기관 29살 남성)

도쿄 유권자의 3분의 1에 이르던 무당파층의 38%가 알고 보니 그에게 투표한 것도 이런 심리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이돌 정치 증후군’이란 책을 쓴 심리학자 야하타 요는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탄생의 1등공신인 무당파층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감각으로 후보자를 논평한다. 거기에 있는 것은 주체적인 발언이나 행동하는 자세가 아니라 ‘00씨라면 무언가 해줄 것’이라는 의존적 심리다.”

김도형/도쿄 특파원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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