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230억원과 한반도평화 / 오태규

등록 2007-04-17 17:36

오태규 수석부국장
오태규 수석부국장
편집국에서
미국이 10일,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동결계좌를 완전 해제했다. 드디어 1년 반 동안 6자 회담의 진전을 짓누르고 있던 큰 바윗덩어리가 제거된 듯했다. 하지만 북한은 13일 ‘제재 해제 확인 뒤 행동 개시’라는 원칙만 밝힌 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원칙 표명도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답변 내용도 미국의 조처를 받아들인다는 것인지 거부한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런 상태로 ‘2·13 합의’의 초기 이행조처 시한인 14일이 훌쩍 지나갔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표현대로라면, ‘시방서’가 제때 시공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비유적 표현을 잘 쓰는 송 장관은 건축용어를 빌려 ‘9·19 공동성명’을 북한 핵문제 해결의 ‘설계도’, ‘2·13 합의’를 ‘시방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송 장관은 13일 관훈토론회에 나와 “지금 밖에 비가 오는데 비가 온다는 것은 앞으로 해가 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조만간 비가 그치고 시방서대로 공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시였다. 하지만 비가 의외로 길게 내리면서 단순한 공사 지연이 아니라, 공사 자체가 취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다. 벌써 미국과 한국에서 ‘인내력의 한계’가 짧은 사람들이 북한 불신론을 꺼내고 있다. ‘비디에이 역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현단계에서 동결계좌 문제의 핵심은 미국이 해제를 했는데도 북한이 돈을 찾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왜 북한은 돈을 찾아가지 않을까?

송 장관은 “송금, 예금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출금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누가 하지 말라고 해서가 아니라 자체의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내부사정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당연히 ‘북한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국가 단위에서 볼 때 사소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는 2500만달러(약 230억원)의 동결 해제에 그토록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보였던 북한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북한 내부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로 ‘13개의 계좌’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6자 회담과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를 잘 아는 한 당국자는 “북한이 애초 비디에이에 가지고 있다고 미국 쪽에 신고한 계좌가 39개였다. 그런데 실제 미국 쪽이 조사를 해보니 52개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새로 드러난 열세 계좌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분석과 추측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 권력층 안의 숙청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권력층에 몰래 돈을 빼돌려 딴주머니를 찬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이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자칫 내부 권력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현금 인출을 꺼리고 끝까지 국제 금융망을 통한 계좌이체를 요구했던 것도 이런 사정 때문으로 짐작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 드러난 열세 계좌의 주인을 따지는 것은 전적으로 북한 내부의 일이다. 북한 내부에서 규명하고 해결할 문제가 남았다고 해서, 6자가 어렵게 합의한 약속을 깨서는 안 된다. 북한이 계속 시한을 연장하며 초기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설계도와 시방서까지 짜놓은 6자 회담은 동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때 북한은 230억원과 한반도 평화를 바꿨다는 ‘독박’을 몽땅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이번에야말로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닌 것 같다.


오태규 수석부국장

oht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