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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이쯤 되면 걱정도 팔자다 / 안재승

등록 2007-04-22 17:25수정 2007-04-22 23:38

안재승 /경제부문 편집장
안재승 /경제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집값 급락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18일 내놓은 보고서 ‘가계 부채의 위험도 진단’에서 “신용카드 거품 붕괴 이후 둔화되던 가계 부채 증가세가 주택 담보 대출 탓에 2005년 이후 다시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어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새롭지는 않지만 맞는 얘기다. 문제는 제시된 처방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자체 개발한 ‘가계 신용 위험지수’로 측정했더니, 주택 담보 대출을 통해 구입한 주택 가격이 5.5% 이상 하락할 경우 가계 신용 위험도가 신용카드 거품 붕괴 당시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분석된다”며 “부동산 정책의 초점을 주택 가격의 상승을 억제하는 데서 벗어나 주택 가격 하락 가능성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하루 뒤인 19일 이장영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한국재무학회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보고서 ‘최근의 부동산 버블과 감독 정책’에서 “주택 가격 하락기에는 담보인정 비율(LTV)과 총부채 상환비율(DTI) 규제를 상향 조정할 수 있는 탄력적 운용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두 보고서 모두 집값 급락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현재 부동산 시장이 이처럼 집값 급락을 걱정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하는지 되묻고 싶다. 최근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는 하나, 실상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비롯해 일부 지역에서 그것도 소폭 떨어졌을 뿐이다.

국민은행 조사를 보면, 올 들어 3월까지 전국 아파트값은 지난해 말과 견줘 평균 1.4% 올랐다. 서울은 2.2% 올랐다. 서울에선 강남 3구인 강남·서초·송파구와 양천구가 2~3월에 0.1~0.3% 내린 정도다. 이들 네 곳의 지난해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은 30%에 이른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2.2%)의 14배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부터 따지면 4년 사이 무려 80% 이상 폭등했다.

지난주 강남구 개포동 주공 1단지에서 종합부동산세를 피하려는 17평형 급매물이 시세인 12억5천만원보다 7천만원 싼 값에 나왔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7천만원 내렸다고 하지만, 지난해 이 아파트는 3억9천만원 올랐다. 또 불과 4년 전인 2003년에는 6억~7억원대 아파트였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부동산 시장을 ‘불안 속의 안정 국면’으로 진단한다. 보유세 강화와 주택 담보 대출 규제로 투기적 가수요가 겨우 진정된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주택 신규 공급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뤄지고 분양값 상한제가 예정대로 차질없이 시행된다면 집값이 하락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면 언제 또다시 불안해질지 모른다”고 말한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지난해 6월 전국 1천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6년 주택 금융 수요’를 보면, ‘연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배율’(PIR)이 전국 평균은 5.33배, 서울은 8.25배였다. 연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배율이란 집값을 가구의 연간 총소득으로 나눈 수치다. 다시 말해 서울에서 내집을 마련하려면 8년 넘게 소득을 다른 곳에는 한푼도 쓰지 않고 모두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하반기 ‘집값 광풍’이 몰아치기 전에 조사한 것이니, 지금은 10배쯤 됐을 것이다.

미리 대비하자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벌써부터 집값 급락을 걱정하면서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바꾸자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지금은 집값에 끼어 있는 거품을 확실하게 걷어내야 할 때다. 이것이 가계 부채의 위험에 대응하는 제대로 된 처방이기도 하다.

안재승 /경제부문 편집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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