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24시팀장
편집국에서
아들은 행복했을까?
힘 있고 돈 있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힘과 돈으로 동원된 경호원들, 건달들을 배경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또래를 마음껏 두드려 패던 그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은 재벌의 무소불위가 뒷골목 주먹싸움에까지 손길을 뻗쳤음을, 나아가 공권력을 백지상태로 만드는 ‘자력구제’의 야만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검찰이 뒤늦게 ‘피의자 인권’ 운운하며 끼어드는 모습이 ‘피해자 인권’에 방점을 찍던 그네들의 평소 언행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꺼림칙한 느낌이 들고, 왜 유독 이 사건에서 ‘피의사실 공표’에 민감한 것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이번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해온 그 법률 전문가들의 태도가 영 못마땅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화 쪽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 사건을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로 한번 바라보고자 한다.
아들은 힘에 밀렸다. 맞고 왔다. 아버지는 분했다. 상대방은 사회적 지위나 재력이나 명망에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술집 종업원들이었다. 아버지는 가진 게 많았다. 그걸 이용했다.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묶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너른 품 안에서 마음껏 복수했다.
아들은 행복했을까?
나라면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불법이기에 앞서 비겁한 짓이니까. 어릴 적 싸움질 끝에 힘센 형을 데리고 와 보복하는 아이들을 보며 느꼈던, 뭐라 표현하기 힘든 울분의 기억이 남아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아버지라면, 그러시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새벽까지 유흥가를 헤맨 나를 엄하게 꾸짖으셨을 것이다. 술김 시비에 휘말려든 경솔함을 나무라셨을 것이다. 정말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맞았다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셨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남의 자식을 가죽장갑 끼고 쇠파이프로 패서라도 자기 자식을 높이려는 심리는 북창동 술집이나 청계산 공사장 현장에서만 활개치는 건 아니다. 자식으로 하여금 어떻게든 남을 누르게 하고 그로써 스스로 승리감에 도취하고 싶은 부모들의 심리는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그래서 학교는 이미 아이들이 공부로 ‘맞장을 뜨는’ 침침한 뒷골목으로 변해 있다. 성적에서 밀리는 아이는 주먹으로 얻어터진 것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강요받는다. 상대방이 사회적 지위나 재력이나 명망에서 뒤지는 배경을 가진 아이라면, 진 쪽 아이의 부모는 더더욱 참지 못한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동원된 조기교육·사교육 선생님들을 배경으로 아이는 자신에게 상처 입힌 또래를 때려눕힌다. 아이는 행복할까? 김 회장의 자식 사랑이 결국 자식을 파탄으로 몰고 있듯, 아이들을 싸움시켜 얻는 결과는 모든 아이들의 패배일 뿐이다. 보복폭행의 연쇄작용일 뿐이다. 성적 경쟁으로 내몰기 전에 아이들의 꿈을 다듬어주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 장점을 배우게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비록 공부에서 지더라도 나락의 생활 조건으로 내몰리지 않는, 그래서 경쟁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인지. 적어도 유년시절엔 장난과 놀이와 우정에 방점을 찍고 살게 할 수는 없는 것인지. 산골 아이들에게 강남 아이들 같은 교육 조건을 마련해 주고, 강남 아이들에겐 산골 아이들 같은 자연 속의 삶을 선사해 줄 수는 없는 것인지. 힘깨나 쓰고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만 챙기지 않고, 그 힘과 돈으로 이땅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도록 세상 바꾸기에 나서는 상상. 어린이날을 맞아 꾸어보는 슬픈 봄꿈. 박용현 /24시팀장 piao@hani.co.kr
생각해보면, 남의 자식을 가죽장갑 끼고 쇠파이프로 패서라도 자기 자식을 높이려는 심리는 북창동 술집이나 청계산 공사장 현장에서만 활개치는 건 아니다. 자식으로 하여금 어떻게든 남을 누르게 하고 그로써 스스로 승리감에 도취하고 싶은 부모들의 심리는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그래서 학교는 이미 아이들이 공부로 ‘맞장을 뜨는’ 침침한 뒷골목으로 변해 있다. 성적에서 밀리는 아이는 주먹으로 얻어터진 것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강요받는다. 상대방이 사회적 지위나 재력이나 명망에서 뒤지는 배경을 가진 아이라면, 진 쪽 아이의 부모는 더더욱 참지 못한다. 부모의 능력에 따라 동원된 조기교육·사교육 선생님들을 배경으로 아이는 자신에게 상처 입힌 또래를 때려눕힌다. 아이는 행복할까? 김 회장의 자식 사랑이 결국 자식을 파탄으로 몰고 있듯, 아이들을 싸움시켜 얻는 결과는 모든 아이들의 패배일 뿐이다. 보복폭행의 연쇄작용일 뿐이다. 성적 경쟁으로 내몰기 전에 아이들의 꿈을 다듬어주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 장점을 배우게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비록 공부에서 지더라도 나락의 생활 조건으로 내몰리지 않는, 그래서 경쟁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인지. 적어도 유년시절엔 장난과 놀이와 우정에 방점을 찍고 살게 할 수는 없는 것인지. 산골 아이들에게 강남 아이들 같은 교육 조건을 마련해 주고, 강남 아이들에겐 산골 아이들 같은 자연 속의 삶을 선사해 줄 수는 없는 것인지. 힘깨나 쓰고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만 챙기지 않고, 그 힘과 돈으로 이땅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도록 세상 바꾸기에 나서는 상상. 어린이날을 맞아 꾸어보는 슬픈 봄꿈. 박용현 /24시팀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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