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일본의 〈엔에이치케이〉(NHK) 위성방송은 이달 초순 ‘아시아의 대회랑’이라는 특집물을 연속해 방영했다. 5회로 짜인 이 기획물은 전쟁·내전·분규, 종교 대립 등의 요인으로 오래도록 닫혀 있던 각국의 국경이 열리면서 날로 확대되는 물자와 사람의 대이동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취재팀은 두 조로 나뉘어 약 한 달 반 동안 트럭·철도·선박 등 다양한 교통편을 이용해 중국·동남아·인도를 누비고 다녔다. 기획 의도는 세계 경제의 끌차로 떠오른 중국의 상품이 아시아 각국에 밀물처럼 몰려가는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있었다. 베트남의 국경도시 돈담은 1979년 중-월 전쟁 때 중국군의 공격으로 초토화됐으나 지금은 국경무역으로 번성을 누리고 있다. 시장에 널린 상품은 거의 중국산이고, 하노이 등 베트남 각지에서 사람들이 대형 버스를 타고 몰려와 물건을 산다고 한다. 베트남 최대의 교역 상대국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미얀마의 만달레이에서 국경도시 무세로 가는 460㎞의 도로는 일본의 중국 침공 때 연합국이 장제스의 국민당군을 지원하고자 군사원조 물자를 보내던 통로였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 상품의 남하 통로가 됐다. 중국 제품은 종교 관습의 차이도 훌쩍 뛰어넘는다. 전원을 연결하면 힌두교 경전을 읽어주는 장치가 인도 수도 델리에서 인기를 끌고 있고, 파키스탄에서는 남자 무슬림들이 머리에 쓰는 모자조차 중국산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엔에이치케이의 기획물을 보면서 먼저 떠오른 것이 북한 경제다. 미국의 장기 경제제재에 따른 대외고립, 시대착오적 이념과 제도 때문에 북한의 경제기반은 아주 취약하다. 중국의 대공세가 거의 지구적 현상임을 고려하면, 중국과 1416㎞에 걸쳐 바로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북한이 어떤 상태로 노출돼 있을지는 쉽게 상상이 간다. 지난주 평양의 3대혁명전시관 터에서 나흘 동안 열린 10차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를 잠시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참가국 명단에 러시아·독일·이탈리아·폴란드 등의 이름이 올랐기는 했지만 그나마 볼만한 상품을 출품한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 쪽이었다. 최대의 가전제품 업체인 하이얼이 한복판의 전시장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동북삼성이나 산둥성 쪽 기업들이 자동차 부품, 신발·보행기·의류 등을 선보였다.
폴란드 전시장을 찾으니 평양주재 대사관의 서기관이 혼자 앉아 있었다. 전시 물건도 거의 없어 여기서 무엇을 하냐고 물었더니 혹시 사업 관련 문의가 있을지 몰라 나왔다고 했다. 평양에 온 지 1년 반 정도 됐다는 그는 기자가 남쪽의 서울에서 직항편으로 왔다고 하자 직항편 얘기는 처음 듣는다며 놀란 반응을 보였다. 요즘 남북 사이에 월평균 1회 이상 직항편이 오가고 있으니 그의 반응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외교관으로서 정보수집 능력이 떨어지거나, 북한 안에서 정보유통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탓일 텐데 아마도 후자 쪽일 것 같다.
코트라가 14일 발표한 북한의 지난해 무역통계를 보면, 중국이 무려 56.7%를 차지했다. 외국인 투자도 중국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나라가 없으니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풀려면 북과 남이 모두 달라져야 한다. 북은 경직된 이념의 외투를 벗어던져야 하고, 남은 내부의 퍼주기 논란을 빨리 넘어서야 한다. 서로 손뼉을 마주치지 않으면 경협의 성과를 낼 수가 없다.
지난주초 서울을 떠나기 전 주간 날씨예보는 수요일에 비가 온다고 했다. 그날이 되자 북한에도 어김없이 폭우가 쏟아져 우리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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