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수석부국장
편집국에서
지난주 언론계의 화제는 단연 정부가 내놓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었습니다. 기자실의 대폭 축소와 전자브리핑제 도입, 정보공개법의 개정을 뼈대로 하는 정부의 방안이 언론계를 들쑤셔놨습니다. 거의 모든 언론사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축시키는 안”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습니다. <한겨레>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어느 언론사보다 앞장서 더욱 크게 ‘아니오’를 외쳤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은 크게 세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한겨레>도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과 마찬가지로 직업이기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군”이라는 실망입니다. 둘째는 “한겨레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을 지지하는 ‘노빠 신문’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네” 하는 놀라움입니다. 셋째는 “한겨레가 반대하는 것을 보니 정부의 정책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믿음입니다.
모두 일리 있는 반응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저희는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 철저하게 시시비비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편집회의에서 몇 차례 ‘이 방안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깊이 있는 토론을 했습니다. 참석자 대부분이 현장 취재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희가 내린 결론은 “취지는 이해하나, ‘정부의 선진화’가 병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실시하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결론 도출이 어렵지 않았다고 해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겨레>의 반대가 직업이기주의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곧 기자와 시민 사이에 놓여 있는 인식의 틈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편집회의 참석자들이 회의에서 한 발언의 요지를 보면, 저희가 어떤 고민 속에서 신문을 만들었는지 그 속살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가 정부가 내놓은 방안대로 취재를 하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여주면 독자들이 새 제도의 문제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자들의 말이 아니라 공무원과 개혁적인 언론단체의 말을 빌려 보도하는 것이 호소력이 있지 않을까.” “많은 시민들이 언론에 대해 깊은 불신을 갖고 있고 기자실 제도에도 비판적이다. 정부의 방침을 무조건 비판하기보다 대안을 제시해 보자.” “이번 제도는 4년간 실시해온 개방형 브리핑제를 확대하자는 것인데, 그동안 시행돼온 개방형 브리핑제가 어떠했는가를 자세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나름의 이유와 선의가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것을 왜 추진하려고 하는지, 과연 언론계에서 바꿔야 할 취재시스템과 관행은 없는지, 있다면 무엇인지도 다뤄야 한다.” “사안별로 시시비비를 따져야지 여야나 보혁의 도식에 맞춰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중·동과 같은 방향의 보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겨레>의 보도를 되돌아보면, 이런 의도가 충분히 전달될 만큼 기사 내용이 튼실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또 언론이 자성할 대목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넘어갔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도 이와 관련한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정치투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정치권과 언론계의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애초부터 이 문제와 관련한 정치권의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보도에서 배제했습니다. 이번 건은 언론 자유와 언론 개혁의 문제이지 세력다툼의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있게 말하건대, 이 지점이 이번 보도에서 <한겨레>와 조·중·동을 가르는 본질적인 분기점입니다.
오태규 /수석부국장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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