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사회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지난 13일치부터 이른바 정부와 대학의 ‘내신 갈등’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발단은 연세·서강·이화여대 등 이른바 ‘상위권’ 사립대들이 ‘내신 4등급까지 만점 검토’ 방침을 내비친 것이었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재정 지원 사업과 연계하는 등 엄정히 대처하겠다”며 발끈했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지난 2월 상위권 사립대들은 잇따라 수능만으로 50%를 선발하는 등 입시안을 내놓았고, 4월에는 서울대가 내신 1·2등급 동점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한겨레>는 ‘이들 대학의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우대 정책으로 내신 중심의 2008학년도 입시정책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교육부는 ‘큰 문제 없다’는 태도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신 1·2등급 안에 들지 못하는 학생이 서울대에 합격하거나, 내신 4등급 밖으로 벗어난 학생이 상위권 사립대에 합격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특히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 1등급마저 이들 대학에 진학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에서, 이들 대학의 방침은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강남 일반고, 비평준화 지역 ‘명문고’ 학생들을 겨냥한 성격이 짙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갑자기 정부가 올해 입학 전형 때 ‘정시모집 학생부 실질반영 비율 50%’ 및 ‘내신 등급 사이에 같은 점수 차를 둘 것’을 요구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라고 했습니다. 입시를 불과 몇 달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상위권 대학들과 여기에 지원하려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대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겨레>가 18일치 3면 ‘정부 널뛰기 대응이 혼란 자초’란 기사를 통해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것은 교육부의 이런 일관성 없는 태도가 문제를 더욱 키워왔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부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일부 대학들이 ‘학생부 명목반영 비율’이 얼마이든, 기본점수를 많이 주고 등급 간 점수 차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실질반영 비율’은 크게 낮추는 것을 알고서도 ‘용인’해 왔기 때문입니다. 일부 인터넷 언론에서는 <한겨레>의 교육부 비판 기사를 보고 <한겨레>마저 사립대 쪽 손을 들어준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독’입니다.
어쨌든 문제는 정부의 강경한 방침에도 대학들이 별로 겁을 먹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교육부가 제재 대상을 가려내겠다는 시점이 일러야 올해 입시가 모두 끝나고 정권이 바뀌는 내년 2월 이후인 탓도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결국 23일 전국대학 입학처장 협의회 회장단이 ‘내신 실질반영 비율 단계적 확대’를 요구하고, 청와대와 교육부가 이를 수용하기로 큰 틀을 잡으면서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듯합니다.
내신 문제를 다루면서 받은 씁쓰레한 느낌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합니다. <한겨레>는 상위권 사립대들만의 목소리가 아닌, 지방대학들을 비롯한 다른 많은 대학들의 주장을 생생히 전해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자기들의 솔직한 태도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주저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대학 관계자들은 개인적으로는 몇몇 사립대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막상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라고 요청하면 움츠러들곤 했습니다. ‘우리까지 괜히 끼어들어 문제를 확대하고 싶지 않다’ ‘자칫 정부 편을 드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는 등의 변명을 대면서 말입니다. 대다수 대학들의 이런 소극적 자세가 대학입시 문제를 더욱 왜곡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inhyeon@hani.co.kr김인현 /사회부문 편집장
inhye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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