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종식 /지역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지난주 금속노조가 산별노조 차원에서 벌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 파업을 두고 ‘정치파업’ 논란이 일었습니다. 논란이라기보다 일방적인 ‘노조 때리기’ 공세였습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정부였습니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함께 ‘노동 3인방’으로 불리던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과거에는 공권력 투입을 되도록 자제했지만 이번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며 공세의 선봉에 섰습니다. 보수 언론과 사용자 쪽은 “에프티에이로 가장 수혜를 보는 쪽이 자동차 산업인데 왜 파업을 하느냐. 정치파업을 하지 말라”고 야단쳤습니다. 현대차와 일본 도요타를 비교하며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설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경총은 파업도 하기 전에 금속노조 간부들을 업무방해로 고발하고, 검찰과 경찰은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노조 쪽에서 보면 사면초가에 몰린 셈이었습니다. “생존권 투쟁을 하고 있다”는 노조 쪽의 목소리는 너무 희미해 들리지 않았습니다. “부분 파업으로 생산량 달성에 차질을 빚은 것은 잔업·특근을 해서라도 메우겠다”고 약속해도 대다수 언론은 짐짓 못 들은 척했습니다. 실제로 노조는 파업이 끝나자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파업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악’일까요?
노동계는 처음부터 한-미 에프티에이를 반대했습니다. 협정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경쟁 일변도의 미국식 신자유주의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였습니다. 현대차 노조는 ‘자동차가 가장 수혜를 받는 부문’이란 주장에 대해 “자동차도 멀리 보면 예외가 아니다. 이번 파업은 ‘정치파업’이 아니라 근로조건 개선 투쟁”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정부는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에 임하면서 반대 쪽 목소리를 처음부터 외면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정치파업’의 원인을 정부가 제공했다는 노조 쪽의 주장이 망발은 아닌 듯합니다. 정부가 한-미 에프티에이가 노동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노조 쪽의 의견을 무시하고 협정을 체결하고, 노조가 이것을 문제삼아 파업을 하니까 정치파업이라고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이 아닐까요?
〈한겨레〉는 창간 이래 줄곧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더욱 많이 전하는 게 진실의 균형추를 맞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겨레〉가 이번 사안에 대한 보도를 만족할 만큼 잘 했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지나놓고 보니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데 이참에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각종 ‘정치 발언’이 말썽을 빚었는데, 선관위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선거 중립 의무 위반으로 결정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반발해 “국민으로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헌법소원을 제출해 다시 파문을 빚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대통령의 주장에 일리가 없지 않습니다. 같은 논리를 노동계의 한-미 에프티에이 파업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노동계는 한-미 에프티에이가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므로 이번 파업도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정당한 의사표시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번 파업이 실정법상으로는 불법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확실히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 아닐까요? 대통령이 자신의 권리에는 민감하면서도 노동계의 권리는 등한히 하는 현실, 한번 생각해볼 대목입니다.
허종식 /지역부문 편집장
jo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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