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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효순칼럼] 간섭과 개입의 아프간 질곡

등록 2007-07-29 22:38

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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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칼럼
한국인 인질 억류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난주 마지막 국왕 자히르 샤가 92살을 일기로 사망했다. 1933년 19살의 젊은 나이에 즉위해 73년 쿠데타로 끝난 그의 재위 기간은 아프간 역사상 비교적 안정된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국내 통치를 능숙하게 했다기보다는 19세기 내내 이 지역에서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린 쟁탈전을 펼치던 영국과 러시아의 상황 변화 때문이다. 영국은 1차 대전 후 인도 대륙에서 번진 독립운동을 막기에 급급했고,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성공과 함께 성립한 소련은 국내 안정 기반을 다지느라 제정시대의 남진정책을 이어갈 여력이 없었다.

아프간은 기원전부터 문명과 물산의 교류와 정복자들의 통로였다. 이번에 한국인 인질들이 수도 카불에서 이동하려고 했던 칸다하르는 유서 깊은 도시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 때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종족 부족들이 섞여 살던 이 지역에서 아프간인들이 독자적 왕조의 틀을 짠 것은 거의 18세기에 이르러서다. 수백년에 걸쳐 아프간을 세력 판도 안에 넣으려고 쟁탈전을 벌이던 북쪽의 아스트라한 왕조, 서쪽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 동쪽 인도의 무굴 왕조가 쇠퇴의 기미를 보일 때였다. 아프간 사람들의 다수를 구성하는 파슈툰의 여러 부족들은 이 세력들을 몰아낸 뒤 ‘로야 지르가’라는 장로회의에서 부족장의 한 사람 아마드 샤를 지도자로 뽑았다. 그는 칸다하르를 도읍으로 정하고 스스로를 파슈툰어로 ‘진주의 시대’라는 의미의 두라니로 칭했다. 두라니 왕조의 시작이다. 아마드 샤는 25년의 치세 기간 영토 확장에 몰두해 대제국을 건설했다. 남쪽으로는 현재 파키스탄의 카라치 등 아라비아해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무굴제국의 수도인 델리와 카슈미르 지역, 서쪽으로는 페르시아 중앙부까지 뻗쳤다고 한다.

하지만 두라니 왕조는 내분으로 몰락하고 무하마드자이 왕조가 1820년대에 출범해 마지막 왕 자히르 샤까지 약 150년 지속했다. 새 왕조는 영국과 세 차례나 전쟁을 벌이면서 왕국의 명맥을 유지했다. 영국령 인도제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다는 이유로 아프간에 인도인 용병을 주축으로 한 병력을 파견했다가 두 차례나 호되게 당한다. 영국의 식민지 경영에서 보기 힘든 군사적 패배였고, 그 결과 인도 총독이 두 번 경질된다.

영국은 군대를 철수시키고 인도제국과 아프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자며 협상을 강요해 1893년 ‘듀란드 라인’을 획정했다. 아프간 국왕 압둘 라만과 인도제국 외상 모티머 듀란드 사이에 결정된 이 경계선은 두고두고 불씨가 된다. 압둘 라만은 인더스강을 경계로 서쪽을 아프간 영토로 하자고 주장했으나, 영국은 식민지 인도를 방위하고 비옥한 펀자브 평야를 확보하려고 술라이만 산맥의 능선으로 나누자고 강요해 관철시켰다.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파슈툰인들의 삶의 공간을 멋대로 양분한 것이다. 그러고는 사탕발림으로 아프간 왕에 대한 보조금을 종래의 연간 120만 루피에서 180만 루피로 늘리고 외국에서 수입하는 무기 탄약에 일체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19세기 그레이트 게임의 두 당사자는 모두 쓴맛을 봤다. 영국은 2차대전 후 인도 대륙에 대한 지배를 포기함으로써 떨어져나갔고, 소련은 1979년 호기 있게 아프간 침공을 감행했다가 자멸의 구덩이를 팠다. 한국은 이 지역에 이렇다 할 연고도 없고 축적된 경험도 없다. 미국의 압력과 국제 공헌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 끌려 파병을 했다가 곤경을 초래했으니 갑갑하기 그지없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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