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24시팀장
편집국에서
신정아(35)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 사건이 연일 신문 지면을 크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씨가 ‘가까운 사이’임이 드러나면서 보도의 양이 훨씬 늘어났습니다. 권력 실세가 거짓말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큰 뉴스인데다, 청와대 고위 인사와 ‘미모의 독신 여교수’의 친분 관계, 그를 통한 뒤봐주기 의혹 등 여러가지 요소가 겹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건은 ‘권력형 비리’라는 뉴스가치와 ‘선정성’을 동시에 가진 소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언론들이 흥미 위주로 흘러가는 경향도 보이고 있습니다. 사건의 본질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비본질적인 사안에 대한 과도한 호기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자우편에 담긴 노골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두 사람의 친밀한 사이를 입증할 ‘제2의 물증’은 어떤 것인지, 두 사람의 숙소는 왜 가까운지 등 독자들의 야릇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가 연일 신문 지면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도 이런 식의 보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최대한 선정성을 배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만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낯뜨거운 물건들이 거론되는 제2의 물증에 대한 기사를 초판 신문에 썼다가, 기사화하기엔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라 다음 판부터 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신씨의 알몸 사진 파문은 선정주의의 극단적 사례라고 저희는 판단합니다. 입만 열면 공정성과 공익을 내세우는 언론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한겨레가 <문화일보>의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기사를 싣자 공감하는 댓글이 수없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일부 독자들은 “문화일보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지만 … 그것보다 한겨레 및 몇몇 인터넷언론, 여성단체가 누드건을 계기로 신정아 사건을 축소하려는 물타기로 비춰지네요”(kmseok74)라는 식의 의구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겨레의 보도에 대한 정치적 해석인 셈이지요. 반대로 이 사건이 지나치게 확대돼 있다는 의견도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실장은 “일부 언론의 접근 태도는 결국 대선을 염두에 두고 범여권 흔들기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의혹 부풀리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신정아씨 사건이 단순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대선과 관련한 ‘정치 사건’으로 변질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번 사건을 되돌아 보면, 저희가 너무 사안을 구조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구체적인 사실에 등한히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른 매체들이 신씨의 신데렐라식 출세기와 엽기적 사기 행각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있을 때, 한겨레는 ‘실력보다 외국대학 간판이 대접받는 사회 풍조’에 본질적인 비판을 가하려고 힘썼습니다. 지난달 18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내보낸 ‘학벌에 포박당한 사회’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저희는 “마녀사냥식 비난을 접고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학벌중심주의의 해결책을 고민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구조 쪽에 시선을 집중하다 보니 뼈대만 있고 피와 살이 없는 건조한 기사를 전하지 않았나 하는 자성도 하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사실이 양파껍질 벗기듯 터져나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앞으로 한겨레는 이번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노력과 함께 구조도 함께 보는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뒤얽히고, 구조적 문제와 선정적 소재가 만나는, 이런 유형의 사건에서 언론이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 모범 답안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이성적 언론의 시험대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박용현/24시팀장 piao@hani.co.kr
박용현/24시팀장 pia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