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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영어교육, 아 유 레디? / 이수범

등록 2008-02-03 19:47

이수범/사회부문 교육팀장
이수범/사회부문 교육팀장
편집국에서
영어교육 문제가 요즘 큰 화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국 대사를 만나 “유 아 베리 웰컴!”이라고 인사를 하고, 대통령직 인수위는 아침 회의를 “굿모닝!”으로 시작합니다. 외래어표기법을 고쳐 오렌지를 오린지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영어를 잘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넓은 국제무대에서 살아갈 우리 자녀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활약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차기 정부가 내놓는 영어교육 혁신안은 뭔가 성급하고 위태해 보입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방안들이 중구난방으로 터져나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수학·과학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 몰입교육’을 하자는 대목에 이르러선, 기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영어교육 혁신안, 약인가 독인가’라는 기획 연재는 이런 문제 의식에서 나왔습니다.

이 시리즈를 하면서 만난 교육현장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는 긍정보다는 부정 쪽에 기울어 있었습니다. 인수위의 방안이 현실성이 떨어지고, 사교육비 부담을 되레 키울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영어교육의 목표가 대학 입시인지, 의사소통인지부터 분명히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결국 인수위는 영어 몰입 교육을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이런 걱정과 비판을 ‘반대를 위한 반대’로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우리는 교육 개혁을 ‘토목공사’처럼 추진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학교 교실에 새로운 수업 방법을 적용할 때면 으레 시범학교나 연구학교를 지정해 장단점을 살핍니다. 새 교육정책이나 외국 사례를 도입할 땐 오랜 세월 꼼꼼히 정책 연구를 거치는 게 상식입니다. 시간도 걸리고 돈도 들지만, 교육 현장에 섣불리 적용했다가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일어날까 우려해서입니다. 하지만 인수위가 영어능력 평가시험 도입, 테솔(TESOL) 소지자의 교사 채용 등을 일정표로 제시하며 ‘속도전’을 펼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교육을 무슨 토목공사처럼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인수위는 5년 집권 기간 동안 4조원을 영어교육에 쏟아붓겠다고 합니다. 국내총생산 대비 공교육비 투자가 한참 뒤처져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반가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걱정이 됩니다. 어디서 그런 재원을 마련할까 하는 의구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영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다른 모든 과목들을 젖혀두고 ‘올인’하는 게 과연 바람직할까요? 새 정부의 궁극적 목표가 혹시 영어 공용어화에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영어를 잘하는 이들을 비정규직 교사로 채용하는 데 1조7천억원을 쓰겠다는 방침도 들려옵니다. 영어교사 자격이 있는데도 몇 해째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인수위 관계자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요? 영어교육을 잘하려면 평균 32.6(초등)~35.7명(중등)인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는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걸까요?

우리 자녀들이 제대로 된 영어 공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혁신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사교육 망국병을 고치는 것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메스를 잘못 들이댔다가는 병이 낫기는커녕 고칠 기회마저 영영 잃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한겨레>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난제 중의 난제인 이 ‘영어 숙제’를 푸는 일에 계속 머리를 싸매고자 합니다.


이수범/사회부문 교육팀장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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