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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삼성 쇄신안’ 감시해야 할 이유 / 박현

등록 2008-04-27 21:56

박현 경제부문 산업팀장
박현 경제부문 산업팀장
편집국에서
삼성이 지난 22일 경영쇄신안을 발표했습니다. 국내외 대부분의 언론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우리도 이건희 회장의 경영일선 퇴진과 전략기획실의 해체가 동시에 발표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번 쇄신안은 지난해 10월29일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의 양심고백으로 시작된 삼성 사태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의 삼성 보도를 두고 독자분들이 여러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삼성에 대한 비판 좀 그만해라’는 주문이 꽤 있습니다. 삼성이 위축되면 국가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으므로, 쇄신안 발표를 계기로 삼성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의견을 보내 주시는 독자들의 진정성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삼성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잘나가는 삼성, 발목잡기’로 매도하는 데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겨레가 삼성을 줄기차게 비판해 왔지만 ‘삼성 망하라’고 기사를 쓴 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비판을 약삼아 명실상부한 세계 일류기업으로 거듭 나길 바랐습니다.

이번 쇄신안에서 한겨레가 가장 주목한 대목은 ‘총수의 제왕적 경영과 불법적 세습구조의 개선 여부’였습니다. 현재와 같은 지배구조가 지속하는 한, 삼성 사태는 언제든 ‘도돌이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이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 확립 등을 쇄신안에 포함시킨 것은 잘한 일입니다. 하지만 쇄신안에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근본 해법이 담기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또 이재용 전무로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가 삼성 사태의 본질인데,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일각에서 ‘이건희 없는 삼성’에 대한 걱정이 나오는 것도 잘 압니다. 경영공백 상태가 오고, 삼성의 강점인 스피드 경영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만 매달리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세계 일류기업 사이에는 윤리·노동·환경 측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경영방식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은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습니다. 주식시장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한텐 당장 서운할지 모르지만 한겨레가 삼성 쇄신안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가혹하게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흔히 모범으로 삼는 미국과 일본의 기업도 한차례 큰 홍역을 치른 뒤에야 오늘날의 선진화된 모습을 띠게 됐습니다. 미국에서는 1870~80년대 창업자가 폐쇄적으로 지배하는 거대 기업군이 등장해 독점적 이윤을 누렸습니다. 일본에서는 1920~30년대 재벌들이 등장해 군국주의화를 추동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기업들의 독점적 지위가 경제적 균형을 파괴하자 독점금지법을 만들어 기업들을 분할했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겼습니다. 일본의 재벌은 2차 대전 후 연합군사령부 시절에 지분을 몰수당하고 해체당한 뒤 사장단회의라는 느슨한 조직을 통해 기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삼성 사태도 한국 자본주의가 질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고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쇄신안 이후의 삼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보도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판할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비판하고, 칭찬할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박수도 치겠습니다.


박현 경제부문 산업팀장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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