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세계의창
미국 경기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석달째 일자리가 감소한 것은 경기침체 때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은 석달째 늘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반면, 주택부문 후퇴는 계속되고 있다. 경기침체를 공식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는 이르면 올여름 공식 발표에서, 지난해 12월이나 1월께 경기침체가 시작됐다고 밝힐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경기침체는 2001년과 마찬가지로 자산거품이 꺼진 데 따른 것이다. 이번에는 주식시장이 아닌 주택시장에서 거품이 일어났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01년과 마찬가지로 최대 피해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될 것이다. 1990년대 말, 외국인 투자자들은 두자릿수 수익률을 기대하며 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다가, 추락하는 증시의 쓴맛만 봤다. 2000년 3월∼2002년 7월, 주식 가치는 50% 가까이 빠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번에도 큰 손실을 입었다. 모기지 부채와 연계된 다양한 파생상품들의 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투자자들이 이렇게 낮은 수익률에 그 큰 위험을 떠맡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증시 투자는 그나마 높은 수익률을 바란 것이지만, 주택저당증권(MBS)을 비롯한 파생상품들의 수익률은 안전자산인 미국 재무부 채권 금리보다 겨우 1∼2%포인트밖에 높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에 기꺼이 투자하려고 한다. 이들은 달러표시 단기채권과 예금증서, 재무부 채권 등을 통해 수조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달러 가치가 유로 등 주요 통화에 비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인데도 보잘것없는 저금리의 달러 채권 보유를 꺼리지 않는다. 2002년 1유로는 82센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1.6달러에 육박한다. 투자자가 지난 6년 동안 유로를 그냥 갖고만 있었어도, 달러로는 2배의 이익을 얻었을 것이란 얘기다. 또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약세 통화이자 금리도 낮은 달러표시 장기채권을 기꺼이 보유하려 든다는 점이다. 미 재무부 채권의 이자율은 3.5%에 머물고 있는 반면, 물가 상승률은 4%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이 장기채권을 보유할 때는 그에 따른 프리미엄을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 금리를 받고 있는 셈이다.
물론 미국의 많은 투자자들이 낮은 금리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미 연방정부는 미국 중산층의 외국환 투자를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내 은행들은 외국환표시 저축계좌나 수표계좌, 혹은 예금증서를 제공할 수 없다. 미국내 투자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그다지 없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1837년 운하 건설 붐이 사그라지면서 처음으로 손실을 입었다. 20년 뒤인 1857년에는 철도 붐 붕괴로 또 한차례 큰 손실을 맛봤다. 분명한 것은, 이런 손실에도 외국인들의 달러표시 자산에 대한 투자는 계속돼 왔다는 점이다. 이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잃었든 간에, 과거는 깨끗이 잊고 완전히 안전한 자산을 사는 것처럼 행동한다. 커다란 손실을 기꺼이 감내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경제학자들은 난감해진다.
물론 외국인들이 기꺼이 커다란 손실을 감내하면서 미국에 투자한다는 것은 사실상 외국의 보조에 의해 생활수준이 유지되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손실을 떠안아야 할 나라들에는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 나라가 개발도상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역시 삶은 공평하지 않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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