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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저녁 식탁에도 ‘촛불’을 켜자 / 손준현

등록 2008-05-11 21:13

손준현 편집담당 부국장
손준현 편집담당 부국장
편집국에서
저녁 편집회의는 다소 어수선했습니다. 5월 첫 번째 금요일.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디딤돌이었던 서울 청계광장에 수천 개의 촛불이 켜졌습니다. 얼마만큼 크게 쓸 건지를 두고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날 밤 내내 편집국은 긴박했습니다. 1면에 4단짜리 사진과 ‘이명박 정부 불신 1만여개 성난 촛불’이라는 제목이 실렸습니다. 3면 스케치 기사에는 ‘광우병 소 못 믿겠다’는 우려에서부터 ‘0교시를 없애라’ ‘부자정책을 포기하라’ 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겼습니다.

저희는 주목했습니다. 겨우 출범 두 달을 넘긴 이명박 정부에서 어떻게 탄핵이라는 말이 거리낌없이 터져나오는지, 그런 분노가 어떻게 온라인 밖으로 뛰쳐나와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이루게 됐는지, 왜 10대들까지 나서 ‘성난 민심’의 큰 축을 지탱하게 됐는지 따져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강부자 내각 파문, 학교의 학원화 등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 불신이 마침내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 협상을 통해 분출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민들레들이 수천 수만의 홀씨를 날리듯, 장소에 따라 수천 수만의 촛불이 다시 온 나라를 밝혔습니다.

신문을 만드는 처지에서 자성의 아픈 가슴도 쳤습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을 때, 캠프 데이비드의 하룻밤 숙박료가 너무 비쌌다는 비판과 함께, 한-미 동맹 강화라는 정치적 수사가 실익이 없음을 분명히 지적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검역주권 포기가 가져올 엄청난 후폭풍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니었는지, 협상의 불합리한 조건 속에서 결과를 너무 쉽게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긴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 자책합니다. 10대들이 되레 언론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10대들은 누구입니까. 1987년 시민과 학생으로 6월 항쟁을 이끈 세대의 자녀입니다. 사회 민주화에 관심이 많았던 항쟁 세대들의 또다른 특징은 과거 어떤 세대보다 자녀들에게 책을 많이 읽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출판사들이 어린이·청소년 책을 팔아 경영에 큰 보탬이 됐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10대 특유의 불안한 열정과 미숙함이 더해졌겠지만, 그들은 검역주권의 포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논리적으로 분명히 판단했습니다. 대통령은 미국 쇠고기를 사먹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10대들은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학교 급식이란 점을 잘 압니다. 패스트푸드에 길든 세대여서 햄버거에 광우병 위험물질이 들어가면 어떤 큰일이 벌어질지도 본능적으로 깨닫습니다. 10대들의 교과서에는 환경보호와 먹을거리 안전성에 관한 내용이 부쩍 늘었습니다. 가정과 사회가 이미 그들에게 ‘광우병 위험 쇠고기’ 같은 사태에는 단호하게 항의하라고 가르친 셈입니다.

항쟁 세대 엄마 아빠들이 경제 살리기와 먹고사는 문제에 온통 정신을 내줄 때, 실용정부 아래 10대들은 안전한 식탁을 위해 촛불을 들었습니다. 10대들이 되레 386세대 부모를 가르쳤습니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나온 10대들이 많았습니다.

사흘 뒤면 <한겨레>가 창간 20돌을 맞습니다. <한겨레>가 6월 항쟁의 구체적 결과물이듯, 6월 항쟁 세대의 구체적 결과물이 바로 지금 10대들입니다. 민주화가 한판 승부가 아니라면, 먹을거리 안전과 생태주의적 가치를 지켜가는 것도 한판의 승부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녁 식탁에도 촛불을 켜보면 어떨까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손 잡고 가야 할 길의 이정표들이 촘촘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 <한겨레>가 함께하겠습니다.


손준현 편집담당 부국장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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