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수석부국장
편집국에서
만리재 고개 위에 성채처럼 우뚝 서 있는 한겨레신문사 건물 바깥벽엔 요즘 ‘한겨레 창간 20돌,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습니다. ‘아니 벌써 20년이라니’ 하는 생각과 함께, 창간 당시 회사를 옮길 때의 일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당시 다니던 신문사의 한 선배는 “6개월만 있다가 돌아와라. 그 회사 6개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다”라며 ‘위로’ 어린 배웅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40배의 세월을 한겨레는 견뎌냈고, 지난 5월15일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성년식을 치렀습니다.
한겨레가 성년이 되기까지의 기간은 수난과 영광의 역사였습니다. 때로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유형무형의 압박과 탄압도 받았지만, 한겨레는 굴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굵직한 특종을 터뜨리며 성장해 왔습니다. 그때마다 주주와 독자들은 저희를 지켜 주고 응원해 줬습니다.
저희는 이번에 지난 20년의 역사와 앞으로의 각오를 담아 두툼한 창간 20돌 기념호를 꾸몄습니다. 15일(80쪽), 16일(68쪽) 이틀에 걸쳐 모두 148쪽을 만들었습니다. 하루치 발행으로는 2005년 창간기념호와 같은 기록이지만, 연 이틀로는 압도적 차이의 신기록 수립입니다. 다른 신문보다 항상 부피가 얇은 것을 불만족스럽게 여기시는 독자분들도 모처럼 포만감을 맛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양으로만 승부를 건 것은 아닙니다. 한국 사회의 영원한 사상적 스승인 리영희, 백낙청 두 원로교수의 말씀은 졸고 있는 중생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죽비소리 같았다는 평가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또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세 전직 대통령의 인터뷰는 언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새삼 되돌아보게 합니다. 다른 언론사의 한 기자는 “세 전직 대통령을 인터뷰해 한 지면에 동시에 실을 수 있는 신문은 아마 한겨레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세 분 모두 한겨레에 애증을 지니고 있지만, 주인(주주)이기도 하다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별지 특집도 네 묶음(Esc 포함하면 다섯 묶음)을 냈습니다. ‘세상을 바꾼 20년’ ‘스무살 이야기’ ‘출발! 새로운 20년’ ‘매그넘 한국을 찍다’가 그것입니다.
‘세상을 바꾼 20년’은 한겨레의 역사와 업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너무 자화자찬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지만, 20년을 지켜온 산증인으로서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자신합니다. ‘스무살 이야기’는 20년 전 한겨레와 같은 해에 태어난 휴대전화를 비롯해 저희와 스무살 동갑내기인 회사와 시민단체 등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본 기사입니다.
저희가 가장 중점을 둔 특집은 ‘출발! 새로운 20년’이었습니다. 20대의 실상과 앞으로의 20년에 초점을 맞춘 이 기획은 한겨레가 지금까지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20대는 비록 ‘절망의 현실’을 살고 있지만, ‘미래의 희망’이 분명합니다. 한겨레는 창간기획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이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격려 못지않게 쓴소리도 주셨습니다. 마음 깊이 새겨 더욱 올곧게 성장할 자양분으로 삼겠습니다. 이제 성년이 된 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달라졌습니다. 폭넓고 균형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가장 정직한 눈’의 자리를 이어 가겠습니다. 앞으로 20년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태규 수석부국장ohtak@hani.co.kr
오태규 수석부국장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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