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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통북소남’을 걱정함 / 정의길

등록 2008-06-29 19:44

정의길 국제부문 편집장
정의길 국제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강행과 북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사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한국 정부 부재’다.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할 한국 정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쇠고기 추가협상을 마친 정부는 여론과 한나라당의 만류로 장관 고시를 늦추는 듯하더니 지난 26일 오전 전격적으로 고시를 관보에 게재했다. 바로 미국 때문이었다. 애초 고시 연기를 주장하던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과 25일자에 관보 게재를 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안다. 한국은 미국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부득이 당이 양보한 것이다”고 확인했다.

추가협상 뒤 여론을 다독일 시간을 벌기 위해서도 고시를 늦추는 것이 여권에 유리한데도 이명박 정부는 이를 챙기지 못했다. 홍 대표의 말대로 한나라당에서도 고시 연기를 강력히 원했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당리당략’도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주말에 재현된 거대한 촛불시위는 사태를 잘 말해준다. 고시는 이명박 정부가 했으나, 껍데기일 뿐이었다.

국내에서 쇠고기 고시가 강행될 때 북한 영변에서는 핵시설 냉각탑 폭파라는 국제적 이벤트가 벌어졌다. 한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그동안 지루하게 벌여온 북핵 줄다리기가 전환점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역사적 현장에 정작 한국 정부 당국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의 얼굴만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 두 사안에서 한국 정부의 부재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던 한-미 동맹 복원이 망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쇠고기 문제를 통째로 헌납했는데도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이명박 정부에게 보내는 시선에는 단순한 싸늘함 이상의 기류가 감지된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관계 복원’의 상징으로 애타게 갈구하던 부시 대통령의 한국 답방은 결국 취소됐다. 답방 취소는 그렇다 하더라도 더욱 문제는 미국이 이를 발표한 방식이었다. 정상의 답방 일정 발표는 양국 정부가 동시에 발표하는 것이 외교적 관례다.

하지만 데이노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렸다. 백악관 쪽은 기자 등 수행 인력의 비행기표 문제 때문에 미리 밝힐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을 했지만, ‘의도적인 외교적 결례’가 분명하다.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의 경멸감이 느껴지는 것은 너무 과민반응일까?

이명박 정부 출범을 전후해 일각에서는 대북 강경책을 우려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대북 무책’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무책’은 그들이 내세우던 ‘한-미 동맹 복원’과 쌍생아이다.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 속에서도 나름대로 애를 써서 오늘의 영변 냉각탑 폭파의 길을 닦았는데, 지금 한국은 그 길을 걷지도 못하고 미국의 질주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명박 정부는 뒤늦게 북한에 옥수수를 지원하겠다며 북한에 손짓하고 있으나, 아무 답변도 듣지 못하는 ‘무시’를 당하고 있다.


이제 한국 정부는 북한의 ‘통미봉남’이 아니라 미국의 ‘통북소남’(通北疎南·북한과 통하고 남한을 소외)을 걱정해야 할 단계이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미국에 모든 것을 올인한 이명박 정부의 초라한 성적표다.

정의길 국제부문 편집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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