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 노드콘텐츠팀장
편집국에서
지난주말 또다시 촛불이 서울 도심을 뒤덮었습니다. 꺼져가는 듯하던 불씨가 다시 타올라 ‘6·10 촛불 대행진’에 버금가는 ‘국민승리 촛불문화제’를 일궈냈습니다. 궂은 날씨와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수십만 인파는 스스로 만들어낸 열기에 뿌듯해했습니다.
6월을 보내고 7월을 맞은 지난 한 주, 우리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6월의 마지막은 흉흉했죠. 일요일 새벽의 무차별 진압작전과 연행, 그에 이은 정부의 협박성 담화문, 서울광장 봉쇄,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벌어진 경찰 압수수색, 이어진 전국 공안·형사부장 회의 …. 각본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정부의 촛불 압박에 시민들은 분노의 한편에서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절망은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라고 했던가요. 촛불이 아무 성과도 없이 이대로 꺼질 것 같던 바로 그때 종교인들이 촛불을 지키고자 거리로 나섰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신부님들이 앞장섰습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해 6·10 항쟁의 기폭제 구실을 한 바로 그분들입니다. 목사님, 스님들도 거리로 나와 손을 맞잡았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국민의 뜻이 부처의 뜻이다.” 상처입은 촛불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그들의 목소리는 준열하면서도 따뜻했습니다.
시민들은 다시금 평정을 되찾고 집회는 애초의 촛불모습을 회복했습니다. 공권력이 일으킨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시민들이 끊어버린 것이죠. ‘국가 정체성을 위협하는 세력이 주도하는 불법 폭력시위이니 지도부만 잡아들이면 촛불도 꺼질 것’이라던 정부는 당혹해했습니다.
무엇이 이런 반전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요? 수백만 신도들의 힘일까요? 수행으로 다져온 성직자의 의지가 그만큼 굳세기 때문일까요? 비밀의 열쇠는 바로 신뢰(믿음)입니다. 그들이 진실 편에 있다는 믿음, 우리와 함께 한다는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이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하고 힘을 준 것입니다. 국민을 섬긴다 해놓고 미국 눈치나 보고,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 말한 지 며칠 만에 선전포고를 하는 ‘겉다르고 속다른’ 식으로는 신뢰가 쌓일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촛불 진압작전과 동시에 미국산 쇠고기에 검역증을 내줬습니다. 거대한 불신의 고깃덩어리를 기어코 시장에 내놓은 것입니다. 이 고깃덩어리가 엮어나갈 불신의 연쇄 고리가 시장에서 어떤 흉측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걱정스럽습니다.
신뢰가 없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될까요? 시장에 불신을 던져 놓고 경제 살리기를 부르짖는 건 뻔뻔한 소치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전 집권당 대표를 뽑는 자리에서 “(촛불을 끄고) 이제는 경제 살리기 횃불을 들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도대체 횃불의 불씨를 어디서 얻으려 하는 걸까요? 촛불을 끄면 횃불의 불씨도 사라집니다. 촛불의 불씨로 횃불을 밝히면 촛불은 자연스레 묻힙니다. 불씨를 어떻게 얻냐고요? 촛불의 소망을 진실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자칫 꺼질 뻔한 촛불을 종교인들이 힘을 모아 다시 살려냈습니다. 거기에 수십만의 촛불이 호응했습니다. 불씨를 얻을 기회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준 것입니다. 촛불의 소망을 붙드는 순간,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쌓이는 신뢰야말로, 경제를 살리는 횃불의 불씨가 될 것입니다.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 신뢰는 경제의 바탕을 다져주는 든든한 자본입니다. 이 대통령은 “신뢰 없는 인터넷은 독”이라고 했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습니다. 신뢰 없는 정부야말로 독입니다.
곽노필 노드콘텐츠팀장nop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