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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국민이 본 검찰, 검찰이 본 검찰 / 이본영

등록 2008-07-20 20:39

이본영 사회부문 법조팀장
이본영 사회부문 법조팀장
편집국에서
어느 검사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께서 청와대 직원들의 국외여행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는데, 여행·항공업계에 대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을까? 대통령의 지시로 모든 공무원이 영향을 받게 되고 그 가족들까지 합하면 수백만명이나 되니 누리꾼들의 광고주 압박 운동보다 타격이 더욱 클텐데.” 그는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웃었습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직원 국외여행 자제 당부’가 나온 뒤 증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행·항공업계의 주가가 또다른 악재를 만났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여행업계 처지에서 보면, 대통령 발언이 끼친 악영향은 검찰 수사 대상인 광고주 압박 운동 못지 않은 셈입니다. 물론 업무방해죄 운운은 농담이지만, 그런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를 반영합니다.

검찰 주변에선 ‘검찰이 타임머신을 타고 70·80년대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이 나돈 지 오래됐습니다. 한동안 사라졌던 ‘정치 검찰’이란 말도 부활했습니다.

이에 대한 검찰의 반응은 대략 세 가지입니다. 첫째,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데 괜한 시비를 건다는 ‘부인형’입니다. 상층부나 수사 지휘라인에서 주로 엿보이는 시각입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최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사를 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것이 문제이지 열심히 진실을 규명하는 것을 왜 문제 삼는가”라는 항변도 들립니다. 이런 이들은 검찰의 중립성 약화를 지적하는 일부 언론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그 신문은 원래 그렇다”는 투로 넘겨 버립니다.

반대로, 소수이긴 하지만 당혹감을 표출하는 ‘반성형’이 있습니다. 최고권력의 입맛에 맞추는 검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스스로 ‘검사된 보람’을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해 자의반 타의반 정치 권력과 거리를 두며 어렵게 얻은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배어납니다.

마지막은 ‘이해 구하기형’입니다. 검찰에 대한 비판이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구시대 검찰’로 돌아가지는 않을테니 지켜봐달라는 것입니다. 수사란 최종 처분을 보고 평가할 일이고, 시늉에 그치는 수사도 있을 수 있으니 너무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여기에는 검찰이 처음부터 최고권력자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기 어렵다는 ‘상황논리’도 담겨 있습니다.

20일 나온 <한겨레>-리서치플러스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현정부 들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중립성이 약화됐다는 의견이 50.0%, 강화됐다는 응답이 28.6%로 나타났습니다. 검찰의 이미지가 나빠졌다(30.6%)는 응답은 좋아졌다(15.3%)는 것의 꼭 갑절입니다.

하지만 검찰의 행보는 날이 갈수록 민심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소수파인 두번째는 물론, 세번째 목소리마저도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광고주 압박운동 수사의 경우, 고소·고발이나 수사의뢰 같은 형식적 수사착수 근거조차 없이 뛰어들더니, 처벌 당위성을 보강하려고 유럽 판례도 뒤진다고 부산을 떱니다. 형사사건에 민사 판례를 들이대는 것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일부 검사들은 더욱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아내의 부정에 대한 증거가 없는데도 “카이사르의 아내는 의심조차 받아선 안 된다”며 이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검찰은 오이밭에 덜퍼덕 주저앉아 입을 오물거리면서도 짚신을 고쳐신을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믿어주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이본영 사회부문 법조팀장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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