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무릇 정책은 명분과 실질, 목표와 수단이 맞아야 한다”고 늘 말합니다. 그는 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대책을 내놓기 이틀 전인 8월29일,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한 간담회에서도 명분과 실질의 일치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세금을 깎아주는 명분과 목표를 ‘일자리 창출’로 내세웠습니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 보도자료 제목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재도약 세제’였습니다. 애초 이 제목만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고용창출형 세제가 도입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기업 투자의 고용유발 효과를 따져서 차별적으로 세제혜택을 준다든지, 취약 계층을 채용하면 그에 비례해서 회사의 세부담을 줄여준다든지 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재정부 보도자료에서는 세제와 일자리 확충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이번 세제개편안에 황당한 주장과 논리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소득세 과표 8800만원 이하’를 기준으로 삼아 중산 서민층을 분류해 감세의 33.4%가 이들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가장 황당한 대목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입니다.
정부는 세제 개편에 따른 가장 큰 경제효과로 18만명의 취업 유발을 내세웠습니다. 계산법은 대략 이렇습니다. 법인세율을 5%포인트 내리면 성장률 0.6%포인트 상승과 국내 투자 10조원 증가 효과 등이 발생해 18만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계산법 자체가 실질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 셈법이 타당하려면 기업들이 법인세 감세분 9조3천억원을 모두 투자로 돌려야 하는데, 증권거래소 최근 집계로는 12월 결산법인 546곳이 내부에 쌓아둔 현금성 자산은 5년여 전보다 두 배 가량 늘어난 62조7447억원에 이릅니다. 돈이 남아돌아도 기업들이 투자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여정부에서도 2005년부터 법인세를 2%포인트 인하해주고, 임시투자세액공제액을 연간 2조원 이상으로 늘려줬지만 기업 투자는 지지부진했습니다.
기업의 여유자금과 투자, 성장 사이의 선순환이 이뤄져도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분석을 보면, 2000년 국내총생산이 10억원 증가할 때 17.6명의 신규 취업이 발생했지만 2006년에는 7.9명 수준으로 떨어져 ‘고용 없는 성장’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대기업들이 자체 설비 고도화나 시스템 자동화 같은 노동절약형 투자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996년에서 2005년 사이 10년 동안 국내 대기업 일자리 수는 72만개나 줄었습니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가 일자리인 것은 당연합니다. 대부분 선진국들이 ‘문제는 경제야!’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문제는 일자리야!’를 외치며 재정지출 확대로 적극적인 고용확충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만들기를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강만수 장관은 강조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떻게’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망쳤다’고 비판해온 참여정부에선, 5년 동안 연평균 4.4% 성장률에 144만3천개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해마다 28만8천명씩 취업자가 늘어난 셈입니다. 올해 정부의 취업자 증가 목표는 20만명 안팎에 불과합니다. 강 장관을 비롯해 정부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깊이 한번 생각해볼 대목입니다.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sbpark@hani.co.kr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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