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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세계를 속인 거짓말 / 박민희

등록 2008-09-21 20:10수정 2008-09-21 20:30

박민희 국제뉴스 팀장
박민희 국제뉴스 팀장
편집국에서
그동안 세상이 거짓말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일까?

얼마 전까지 ‘정부의 규제는 경제발전을 막는 악’이라고 떠들어대던 이들이 이제는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세상이 망한다고 난리다. 세계화만이 살길이니 전세계가 금융과 무역 장벽을 허물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며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던 미국 정부가 이젠 7000억달러(약 795조원)의 세금을 퍼부어 금융회사 구하기에 나선다. 미국 정부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에이아이지(AIG)에 쏟아부은 국민 세금이 이미 2850억달러(약 323조원)이다. 한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901조원을 훨씬 뛰어넘는 돈이 거짓말의 대가를 치르는 데 쓰이게 됐다.

혼란스럽다.

추석 연휴에서 돌아온 서민들은 난데없는 ‘월가 금융위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펀드에 넣어둔 내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주택담보 대출 이자는 어떻게 될지, 은행 대출이 어려워진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허둥대야 했다.

이 엄청난 위기가 미국의 부동산 거품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한국 정부는 ‘더 많은 집을 짓고, 더 빨리 규제를 풀자’는 ‘대담한(?)’ 경제정책을 잇달아 발표한다.

얼마 전 중국 경제 위기론의 실체를 알아보겠다며 상하이 중심가의 한 객장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내 돈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 어리둥절해하던 중국의 서민들을 여럿 만났다. 낡은 자전거를 객장 밖에 세워 놓고 삼삼오오 수군대던 낡은 옷차림의 이들은 도대체 왜 1년도 안 돼 중국 주가가 70% 폭락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600위안(약 10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1만위안(166만원)을 투자했다는 가정부 아주머니는 절반도 안 남은 투자금에 울상을 지었다.

지난주 한국에 온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연합회(IIF) 총재는 미국 재무부와 제이피모건에서 일한 금융계의 권위자다. 그는 제이피모건에서 일하던 시절 ‘큰손’ 고객이 거액의 파생상품 거래를 제안하러 왔을 때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2시간 동안 거래내역을 파악한 뒤 회장실로 결재를 받으러 갔다. 설명을 시작한 지 3분도 안 돼 내가 거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분명해졌다. 회장은 제대로 이해한 뒤에 다시 오라고 했고 24시간 뒤 겨우 다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금융 거래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금융 전문가들이 투자위험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이런 위험한 투자에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었다. 그동안에도 ‘규제 철폐’만이 정답이고, 국가의 역할은 후진적이라는 주장만 떠들썩했다.

세계화가 맞긴 맞는 것 같다. 한국 정부도, 회사원도, 중국의 서민들도, 월가의 전문가도 거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끝과 끝에서 이토록 복잡하고 끈끈하게 그리고 역설적으로 얽혀 있었다. 서민들은 나만 안 하면 미래가 더 팍팍해질 것 같아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전문가들이 운용한다는 펀드에 맡겼다. 그런데 1년에 수백억원을 받는 월가의 최고 전문가들이 이제 와서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지러운 일주일을 보낸 뒤, 우리는 시장의 방해물로 손가락질당하던 국가의 ‘화려한 귀환’을 씁쓸하게 목격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슬프지만, 좀더 눈을 크게 뜨고 뉴스를 깊이 따져봐야 할 세상이 왔다. 우리 삶을 더는 거짓말에 내맡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박민희 국제뉴스 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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