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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종부세와 ‘나도 시장주의’ / 김영배

등록 2008-09-28 21:35

김영배 경제부문 재정금융팀장
김영배 경제부문 재정금융팀장
편집국에서
“지대(地代)는 많은 경우 그 소유자가 관심이나 주의를 전혀 기울이지 않고도 향유할 수 있는 수입이다. 따라서 지대는 그위에 부과되는 특수한 조세를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다.”

토지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지지하는 이 발언은 뜻밖에도 자유시장주의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의 든든한 사상적 ‘빽’으로 여겨지는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도 “세금 중에 가장 덜 나쁜 것은 토지에 부과되는 재산세”라는 헨리 조지의 주장에 동감을 표시했습니다.

스미스를 비롯한 정통 시장주의의 경제학자들마저 토지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에 적극적인 지지의 뜻을 보인 이유는 자명합니다. 경제 정의나 세수 확보를 넘어 더 근본적으로는 건강한 자본주의를 뒷받침할 경제적 효율성 때문일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대표 슬로건 역시 시장주의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토지 불로소득 환수 장치의 상징인 종합부동산 세제의 해체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에 대한 징벌적 성격을 띤, 아주 나쁜 세금’이라는 게 그 이유입니다. 애초 한나라당의, 그것도 서울 강남 쪽을 지역구로 둔 몇몇 국회의원들이 의원 입법 방식으로 살금살금 추진하던 것이 이제 정부·여당의 공식 방침이 됐습니다.

입법안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얼마나 수정될지는 몰라도 지금 정부안대로라면 종부세는 있으나마나 한 빈껍데기가 될 게 분명합니다. 종부세 대상자는 현재 전체 가구의 2.0%에서 0.9%로 줄어들고, 세율은 종전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실효세율(세금이 시가에서 차지하는 비율) 기준으로 따질 때 비싼 주택일수록 오히려 감면율도 더 높아집니다.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고가주택조차 보유세 실효세율은 주요 선진국의 20~30%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민심을 더욱 부글부글 끓게 만든 건 부자들에게 매기는 종부세는 이렇게 깎아주면서 일반 서민층에도 부과하는 재산세는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 쪽에선 재산세 추가 부담은 없도록 한다면서 재산세 세율 인하 뜻까지 밝힌 바 있지만, 조삼모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세율을 얼마나 낮출지도 분명치 않거니와 설사 낮춘다 하더라도 종부세의 부족분 만큼을 다른 세목에서 끌어와 채울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아니면, 정부 지출을 줄이는 방법으로 대처할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건 부자가 감당할 몫을 일반 서민층의 짐으로 돌리는 결과는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불로소득이 무성한 사회는 보통사람들의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창의성을 발휘할 동기도 앗아갑니다. 정통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걱정한 것도 바로 이런 불건강한 자본주의였습니다. 진정한 시장주의라면 가뜩이나 엉성한 토지 불로소득 환수 장치를 더욱 헐겁게 만드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밤나무 비슷한 것으로, 나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라고 불리는 재미있는 이름의 나무가 있습니다. ‘너도’는 남이 인정해주는 것이고, ‘나도’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어감을 띠고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너도밤나무가 질적 특성으로 밤나무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현 정부는 스스로는 시장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부세 무력화를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밖에선 인정해 주지 않는 ‘나도 시장주의’인 것 같습니다.


김영배 경제부문 재정금융팀장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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