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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인의마을] 검은 지층의 노래 / 허연

등록 2008-10-26 18:13

시인의마을
열병 앓는 머리맡에서 아주 오래전 노래가 흐른다. 지층의 흉터를 따라 흐르던 노래. 지층이 파 놓은 아주 미세한 홈을 따라 흐르던 노래. 가끔씩 상처 난 지층의 절개면에서 불협한 소리를 내곤 하던 노래. 돌고 돌았던 검은 지층의 노래. 누구의 뼈를 깎아서 만든 노래. 그 뼈를 기억하고 있는 검은 노래.

판판이 깨진 노래. 한 시대와 또 다른 시대가 장중하게 죽어 갔던 노래. 모닥불에 던지면 한 줌도 안 됐던 노래. 애저녁에 영원할 수 없었던 노래. 손쓸 수 없는 파멸을 담았던 노래. 차마 칼을 뽑지 못했던 그 봄밤에 들렸던 노래. 일몰 후에는 단조로 변했던 세월의 노래.

세로로 서 버린 노래. 문자가 되어 버린 노래.

-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에서


허연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불온한 검은 피>,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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