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경제부문 재정금융팀장
편집국에서
은행들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외화 빚에 대해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아야 할 처지에 빠지고, 그 대가로 강력한 자구노력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임직원 임금을 깎거나 동결하고, 행장의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반납한다는 선언도 나왔습니다.
금융기관을 감시·감독하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서슬이 퍼렇습니다. 은행들에 공적 지원을 해주는 대신 양해각서(MOU)를 맺어 경영 합리화를 꾀해야 한다고 은행들을 몰아세웁니다. “은행 채무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은 국민의 부담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려면 은행들이 일정 수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은행은 갑자기 ‘죄인’으로 전락하고, 금융 감독 기구는 ‘정의의 사도’가 된 듯합니다.
그런데 금융 감독 기구는 아무런 죄가 없을까요? 한 경제계 인사는 이렇게 꼬집습니다. “은행들은 양떼다. 풀을 뜯어먹으려고 가게 돼 있다. 목동이 말려야지, 왜 양떼 탓만 하나.” 은행들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감독기관의 책임에 대해선 왜 아무 말도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금융위·금감원에 대해 “후안무치하다. ‘후천성 염치 결핍증’에 걸린 것 같다”고 질타했습니다.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이 유독 우리에게 심하게 몰아닥친 이유의 하나는 바로 은행의 경영 실패 때문입니다. 그런데 은행의 실패는 감독의 실패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기획대출(PF)을 비롯한 마구잡이식 대출, 양도성예금증서(CD)·은행채 발행을 비롯한 시장성 수신의 증가에 따른 혼란을 감독기구가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감독 실패의 이유를 금감원 내부 사람들한테 들어보면, 대략 두 가지를 꼽습니다. 하나는 ‘규제는 악, 규제완화는 선’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도식으로 규제완화를 무조건 정당화해 온 분위기입니다. 이런 흐름은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강화됐습니다.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금과옥조로 내세운 친시장주의 슬로건 아래에서 감독기관은 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존재이고, 규제는 최대한 풀어야 할 악의 사슬로 전락했다는 얘기입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개편된 금융감독원 조직 곳곳에 ‘서비스’란 말이 붙어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징표입니다.
금융회사들의 노회한 언론플레이도 한몫했다고 금감원 사람들은 하소연합니다. 중소기업 대출이나 주택담보 대출에 대해 감독당국 쪽에서 경고 신호를 보내면, 은행들은 언론을 통해 ‘개명 천지에 웬 관치?’라는 논리를 펴며 이를 무력화시키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동의 죗값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목동의 임무는 으레 그런 어려움을 넘어서야 달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감원 누리집을 뒤져보면, 금감원의 설립 목적은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 등의 수행을 통하여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하고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함’이라고 돼 있습니다. 감독 업무를 서비스의 견지에서 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서비스의 대상은 금융회사가 아니라 금융 소비자임이 여기에서도 분명합니다. 금감원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금융회사의 분담금 또한 결국은 금융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임을 감독기구 쪽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금융위·금감원의 염치 회복과 분발을 촉구합니다.
김영배 경제부문 재정금융팀장kimyb@hani.co.kr
김영배 경제부문 재정금융팀장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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