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권 문화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헌법재판소가 ‘5 대 4’로 간통죄의 생명줄을 유지시키는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 ‘편견’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간통죄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게 만든 당사자, 영화배우 옥소리 때문이었다.
제법 잘나가는 배우이자 라디오 진행자였던 옥소리는 자신의 외도, 남편 박철과의 이혼을 둘러싼 여러 갈등 등으로 한동안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무렵 내게 옥소리는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그렇고 그런 여자 연예인’ 정도일 뿐이었다. 구설에 올랐던 다른 연예인들처럼 숨죽여 지내다 은근슬쩍 컴백을 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이었다. 옥소리는 숨지 않았다. 간통이라는 ‘주홍글씨’가 다시 가슴에 새겨지는 것을 감내하며, 간통죄가 이 시대에 타당한 것인지를 공개적으로 물었다. 간통죄가 헌법에 기초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다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않는다손 쳐도, 이제는 그를 자기 정체성이 뚜렷한 용기 있는 여성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옥소리를 보면 또 다른 영화배우 김부선이 생각난다. 그는 1985년 염혜리라는 예명으로 <애마부인 3>의 여주인공을 맡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80년대 중반, 김부선은 적잖은 남성들에게 ‘은밀한 로망’이었다. 하지만 그는 86년 대마초 복용으로 구속됐고 그뒤 세간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한동안 김부선은 내게 ‘마약이나 하는 3류 에로배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김부선이 사람들에게 새롭게 인식된 것은 그가 대마초 합법화 운동에 발벗고 나서면서부터다. 그는 2004년 대마초를 인정하라는 헌법소원을 냈고, 대마초로 마약사범이 된 가수 전인권을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변호했다.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해 ‘행동하는 연예인’으로 화제를 낳았다. 대마초 금지가 행복추구권과 인권에 위배된다는 그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김부선을 섹시함과는 다른 건강함과 당당함을 지닌 여성으로 이해하고 싶다.(물론 그는 여전히 섹시하다!)
안타깝지만 반대의 깨달음도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어떤가. 유 장관은 80년부터 22년여 동안 장수한 문화방송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댁 둘째아들 용식으로 나왔다. 공무원인 형 대신 농사일을 떠맡은 것에 때론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묵묵하게 땅과, 땅의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씨 착한 사람이었다. 이런 ‘용식’의 이미지는 그가 대중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자산이 됐다.
하지만 지난 8개월여 동안 그가 장관으로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다. 장관이 되자마자 ‘코드 인사’ 논란을 앞장서 불러일으키며 자기편 챙기기에 열중했다. 급기야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 섞인 반말을 했다. 문화와 언론을 담당하는 장관의 행동치고는 심하게 품위를 잃은 일이다. 그 결과로 그는 휴일에 부랴부랴 대국민 사과를 했다.(헌데, 이 잘못이 장관직에서 물러날 일은 아니란다!)
편견은 참 무섭다. 상대의 다른 면모를 발견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한, 자신의 공정하지 못한 생각을 바로잡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존재인 연예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미디어를 통해 ‘비쳐지는’ 얼굴은 미디어 바깥에 있는 그의 ‘생얼’을 압도하기 십상이다.
유인촌 장관을 바라보며 적잖은 이들이 이런 편견을 갖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한 나라의 장관을 맡기기엔 연예인 출신은 아직 무리야’라는. 정재권 문화부문 편집장jjk@hani.co.kr
유인촌 장관을 바라보며 적잖은 이들이 이런 편견을 갖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한 나라의 장관을 맡기기엔 연예인 출신은 아직 무리야’라는. 정재권 문화부문 편집장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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