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주 고등과학원 교수국제수학자대회 유치위원장
과학칼럼
과학 활동이 사회문화에 끼치는 파급 효과는 본래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일도 있고 과학자들의 치밀한 기획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뉴턴의 미적분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같은 학문 성과는 가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립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뉴턴과 아인슈타인도 다 예측하지 못한 현대 문명의 큰 진보를 일으킨 전자의 사례에 속한다 하겠다.
후자의 흥미로운 사례로, 독일 수학자들의 얘기가 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분단 현장은 오랜 동안 냉전시대 동서 갈등의 상징이었다. 그러던 게 1990년대 초 옛소련 체제가 흔들리면서 동·서독은 허망할 정도로 쉽게 통일됐다. 사회통합 문제는 새로운 국가적 화두로 떠올랐다.
물리적 통합은 이뤄졌으나 화학적 통합은 요원하던 당시에, 일단의 독일 수학자들은 ‘수학을 통한 통합’을 꿈꾸기 시작했다. 동·서독 수학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관심사를 찾으려는 순진하고 단순한 꿈이었다. 독일 수학자들은 그 꿈의 가능성을 국제수학자대회(ICM)의 베를린 개최에서 찾았다. 이 대회는 4년마다 열려 세계 수학자들이 참가하는 기초과학 분야 최대의 학술대회인데,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필즈상을 개막식에서 수여하는 수학 분야의 올림픽으로도 일컬어진다. 그래서 학술대회 이상으로 사회적 관심 대상이 된다. 청소년들한테는 닮고 싶은 영웅의 역할모델을 보여주는 문화적 측면도 있다. 잠재력을 지닌 개최국의 젊은 수학자들이 국제 무대에 데뷔해 대수학자가 되는 창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8년 대회를 베를린에서 열려는 꿈은 인접국인 스위스 취리히에서 1994년 대회가 열리기로 이미 정해진 상태라 쉽잖은 일이었다. 국제수학연맹(IMU) 안에서도 반대 의견이 컸다.
독일 수학자들은 동·서독 수학자가 준비과정에서 함께 만들어갈 협력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이런 통합과정이 젊은 학자들의 교육과 지원 같은 국가적 과제에 크게 기여할 것임을 널리 알려나갔다. 독일에서 대회가 열리면 낙후된 지역에 희망을 줄 것이고, 그래서 국제수학연맹한테도 자랑스런 일이 될 것이라는 점도 강조됐다. 결국 독일은 베를린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실제로 대회를 거치며 옛 동·서독 지역에 많은 협력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유럽연합의 동유럽 지원 프로그램이 생겨 동유럽과 서유럽의 통합에도 기여했다.
한국은 대한수학회를 중심으로 국제수학자대회 유치위원회를 구성해 1년 반 동안 준비작업을 거쳐 최근 2014년 대회의 한국 유치 제안서를 국제수학연맹에 냈다. 2010년 인도 대회에 뒤이은 ‘집중의 효과’를 통해 아시아에서도 협력 프로그램과 개도국 지원 프로그램이 생겨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부 프로그램의 북한 개최를 모색해 남북한 학문 교류의 물꼬를 트겠다는 꿈도 생긴다. 유럽 중심으로 발전한 수학의 특성 때문에 이 대회가 110년 동안 대부분 유럽에서 열렸고 한국의 최근 성장을 잘 모르는 유럽 학자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회 유치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이제 내년 2월 방한할 국제수학연맹 실사단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한국 수학자들의 열망이 사회적 관심과 지원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하게 되길 고대한다.
박형주 고등과학원 교수국제수학자대회 유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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