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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효순칼럼] 아소 총리의 골프장

등록 2008-12-23 19:51수정 2008-12-23 19:52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지난주 외국 언론들은 주목했지만, 국내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던 얘기가 하나 있다. 아소 다로 일본 총리의 일족들이 대대로 운영해 오던 아소광업 산하 탄광에서 연합군 포로 300명이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강제노역을 했다는 사실을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후지타 유키히사 민주당 참의원 의원이 공개한 문서를 보면, 영국인 101명 오스트레일리아인 197명 네덜란드인 2명 등 300명이 후쿠오카현 요시쿠마탄광 포로분소에서 1945년 5월부터 석 달 동안 노역을 했다.

연구자들과 피해 당사자들이 연합군 포로의 탄광 사역을 오래전부터 주장했으나, 일본 정부는 부인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2년 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중국인 강제 연행자들의 보상요구 소송을 다루면서 아소광업이 아시아인이나 서유럽인을 강제로 부려먹었다고 보도하자, 뉴욕 주재 일본 총영사관은 아소 당시 외상의 지시로 증거 없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반론을 누리집에 올렸다. 얼마 전 이 반론이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한다.

기막힌 것은 연합군 포로의 아소광업 관련 문서가 50여년 동안 후생성 지하창고에 방치돼 왔다는 점이다. 후생성 관료들은 참의원이 야당 지배 체제로 바뀐 상황에서 후지타 의원이 끈질기게 자료제출을 요구하자 마지못해 문서를 내놓았다. 뒤늦은 공개에 대해서는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검토하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역대 자민당 정권의 관료들은 식민지배나 침략전쟁의 악행을 입증하는 자료의 존재를 무조건 부인하고 피해 당사자나 관련국이 문제를 제기하면 “확인된 사실이 없다”며 피해갔다

연합군 포로의 강제사역 문제조차 이럴진데 하물며 한국인(조선인) 강제연행에 대해 일본 정부가 스스로 자료를 공개해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적어도 현재의 자민당 정권이 물러나지 않는 한 일본의 진정한 과거청산은 가능성 제로로 봐야 할 것이다. 일제 때 아소광업 탄광에서 가장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조선인들이다. 일본인 학자와 법률가 등으로 꾸려진 ‘재일본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 아소탄광의 징용자 수는 1만623명으로 연합군 포로의 수십배에 이른다. 후쿠오카 지역에 있던 3대 탄광 회사 중 아소계가 임금, 작업환경, 노무관리 등 모든 면에서 가장 가혹했다고 한다.

연합군 포로들이 강제노동을 했던 요시쿠마탄광에서 1936년 1월25일 갱내 화재가 발생했다. 광업소 쪽은 불길이 탄층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갱내를 봉쇄해 버렸다. 불길이 꺼진 뒤 막장에서 29구의 주검이 발견됐는데, 25구가 조선인이었다. 가장 위험한 막장에서 일을 하던 이들은 출구를 찾느라 갱도 여기저기를 찾아 헤맨 듯 손톱이 다 벗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탄광의 옛터에 1973년 10월 문을 연 것이 ‘아소이즈카 골프클럽’으로, 아소 총리가 현재 이사장이다. 올림픽에 사격선수로 출전한 바 있고 골프 싱글 실력을 자랑하는 아소가 피맺힌 역사가 서려 있는 곳에서 골프를 즐긴다는 얘기가 된다. 아소가 9회 당선된 선거구인 이즈카의 서점에는 그의 최측근이 감수한 <조선인 강제연행의 허구>라는 책이 산처럼 쌓여 있다고 한다. (<세계> 2009년 1월호)

이명박 정부의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무력화 움직임에 대해 일본의 민주당 의원들이 재고를 요청하는 의견을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에 전달하는 웃지 못할 광경조차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과거사위 통폐합 법안을 공동발의한 의원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아소 총리 편입니까?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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