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눈] 진보언론이 바꿔야 할 경제사상의 물줄기 /이봉수

등록 2008-12-24 20:00수정 2009-05-28 17:13

세계가 신자유주의 극복 노력… 한국은 신개발주의와 함께 기승
4대강 정비, 타당성·민주성·이념성의 관점에서 비판할 필요
시민편집인의 눈/

1929년 대공황 이래 가장 심각하다는 불황이 닥치자 국가 개입주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그가 탁월한 경제학자임에는 틀림없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한편으로 대단한 저널리스트였다는 사실이다.

<경제 언론의 힘>이라는 책의 저자 웨인 파슨스는 ‘케인스가 1920년대에 명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교수가 아니라 경제 저널리스트로서였다’고 썼다. 학술지보다는 언론매체가 그의 공론장이었다. 당시 그는 경제현실에 대한 조회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각종 신문과 잡지에 무려 300건의 기사를 썼다. 우리나라 상당수 사회과학도들이 ‘잡문은 안 쓴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현실의 끈을 놓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21
21
프리드만은 경제사상에서 케인스와 대척점에 있었지만, 언론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1965년 말에 발간된 <타임>의 ‘지금은 모두가 케인지언’ (We Are All Keynesians Now)이라는 표지 제목은 사실 프리드만의 한숨 섞인 발언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는 이런 경제사상의 대세를 바꾸고자 언론을 선전도구로 삼았기에 ‘가공할 프로파간디스트’라는 평을 들었다. 그는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 변화는 여론의 변화에 의해 선도된다”고 보았다.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 물결은 ‘시장의 대실패’를 겪고 나서야 기세가 주춤해지고 있다. 지금의 세계경제 위기는 1979년부터 누적된 신자유주의적 모순의 귀결점이다. 대부분 국가들이 정책의 대전환을 꾀하고 있는데도 그 조류를 외면하는 지구상의 독보적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신개발주의와 결합해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반환점에서 돌지 않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달리는 마라톤 선수라고나 할까?

한국사회의 방향감각 상실 증세는 지식인과 언론의 책임이 크다. 위기와 함께 반성의 기회가 왔는데도 다수 학자들과 보수언론은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겨레>조차 균형을 잡는 일에서 기대에 못미쳤다.

최근 사례로 ‘4대강 정비계획’이 보도된 16일치 한겨레를 보자. 한겨레는 ‘대운하 추진단이 4대강 비밀추진팀으로’ 운영됐다는 점을 부각시켰으나, 해설은 1개면에 그쳤고, 그나마 지방판에서는 5면에 실렸다가 나중에 3면으로 앞당겨졌다. <경향신문>이 3면과 4면에 펼친 것이 돋보였다.


해설기사의 내용은 보수신문들이 ‘19만명 고용, 23조 생산유발 … 강-경제 동시 회생’(동아) 등 긍정적 효과를 강조한 반면, 경향이 ‘경기부양 근거 제시 못하고 실효성도 의문’이라며 정비계획 자체에 시비를 걸고 나섰다. 한겨레는 ‘물길 정비·제방 보강’으로 정비계획의 내용을 소개한 뒤, ‘4대강 정비는 대운하 1단계’라는 일부의 시각을 전했다.

이 이슈와 관련한 한겨레의 보도 태도는 23일치 국토해양부 업무보고 기사에서도 재연됐다. 경향이 국토부가 ‘다시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점을 1면에서 지적하며, 5면을 털어 ‘물 부족 해결 명분’으로 ‘토건국가식 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한 반면, 한겨레는 ‘주택 재당첨 제한 2년간 폐지’ 등에 초점을 맞췄다. 같은 날 한겨레는 4대강 정비계획을 비판한 전국교수모임의 긴급토론회를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국토부 업무보고를 ‘투기 가수요 불어넣기’로 비판하는 것도 에디터의 ‘의미 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필자가 의견을 들어본 국토계획과 환경 분야 전문가 중에는 “한겨레가 4대강 정비 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도 있었고, “진보언론의 ‘맏형’인 한겨레가 앞장서서 이명박 정부가 속도전에 들어간 ‘토건국가 행군’을 막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면 어떤 관점에서 이슈 파이팅을 할 것인가?

첫째, 타당성의 관점이다. 대운하는 경제성조차 없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경제성이 있는 사업일지라도 한정된 예산의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더라도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은 사실상 거의 끝난 사업이다. 경기부양과 고용의 시급성을 말하지만, 건설업에 대한 정부 재정지출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다른 선도산업과 사회보장 지출에 견주어 훨씬 떨어진다. 대학 진학률이 83%에 이르는 나라에서 대졸자를 공사판 임시직으로 활용할 건가? 이런 관점에서 한겨레가 4대강 정비계획 자체를 비판하기보다 ‘대운하의 1단계가 아닐까’ 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쉬웠다.

둘째, 민주성의 관점이다. 국토의 미래를 결정짓는 대규모 토목사업이 여론을 거슬러 집행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남권 주민 75%가 찬성했다는 ‘낙동강 물길 살리기’ 여론조사도 이미 조작 의혹이 불거졌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전광석화처럼 착수해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여야 한다”는 발언에는 민주성의 참담한 현주소가 드러난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셋째, 경제사상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와 신개발주의에 집착함으로써 초래되는 문제점들을 드러내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무리한 경기 부양책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파산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준비돼 온 것이었다. 원인은 놔두고 건설업에서 처방을 찾는 것은 미봉책이다.

신개발주의는 겉으로 주민이 주역이 되거나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고, ‘환경·생태·여가·복지·문화’ 등 근사한 가치들로 포장되기 때문에 개발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게 보통이다. 청계천 복원이나 뉴타운 개발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신개발주의도 결국 충돌하는 가치들 중 일부를 강조하는 것이다. 예컨대 산과 산을 하늘높이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여가활동에는 편리할지 몰라도 마을의 경관과 환경을 해치게 된다.

과거 미국의 뉴딜정책뿐 아니라 버락 오바마의 경기대책도 건설산업보다는 의료/실업보험과 공공교육을 강화하고 저소득층의 소비여력을 확대하는 케인스 좌파적 이념을 따르고 있다. 전국토가 공사장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4년간 기획기사의 보고가 될 것이다. 이 참에 바로잡아야 할 물줄기는 4대강이 아니라 개발정책이요 경제적 이념이다. 여론을 선도해 근본을 바꾸려는 일의 중심에 <한겨레>가 섰으면 한다.

이봉수/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윤 대통령 “‘살상 무기’ 지원 검토”, 기어코 전쟁을 끌어들일 셈인가 1.

[사설] 윤 대통령 “‘살상 무기’ 지원 검토”, 기어코 전쟁을 끌어들일 셈인가

김 여사가 대통령 같은 나라 [뉴스룸에서] 2.

김 여사가 대통령 같은 나라 [뉴스룸에서]

[사설] 수출마저 꺾인 경제, 정부 낙관론 접고 비상하게 대응해야 3.

[사설] 수출마저 꺾인 경제, 정부 낙관론 접고 비상하게 대응해야

학교예술강사 예산 72% 삭감…‘K-컬처’ 미래를 포기하나 [왜냐면] 4.

학교예술강사 예산 72% 삭감…‘K-컬처’ 미래를 포기하나 [왜냐면]

러시아 몰아낸 독립협회 ‘자립투쟁’…일본, 만세를 부르다 5.

러시아 몰아낸 독립협회 ‘자립투쟁’…일본, 만세를 부르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