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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독자칼럼] 소걸음으로 생각하며 / 최종욱

등록 2008-12-31 20:20

독자칼럼
작년 한 해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동물은 뭐니 뭐니 해도 ‘소’가 아니었나 싶다. 바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그리고 그에 이어진 촛불집회 등. 그 와중에도 미국산 쇠고기는 서서히 우리 먹거리 시장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역시 상인들의 예지능력은 생계형인 만큼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그들은 수입 재개 당시 처음의 반발은 3개월, 길게는 6개월이면 끝날 것이라는 얘기를 했고 그 예감은 지금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수의사의 눈으론 미국 소든 한국 소든 품종만 다르지 다 같은 소일 뿐이다. 우리 동물원에 아프리카 부족들이 가축으로 기르는 ‘와투시’라는 큰뿔소가 있다. 이름 그대로 이들은 머리에 코끼리 어금니만큼 하얗고 큰 뿔을 쌍으로 가지고 있다. 그 큰 뿔만 아니라면 이들은 우리 한우와 체구와 털 색깔까지 거의 흡사하다.

미국산 소, 한국산 소를 만든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다. 광우병 소 역시 마찬가지다. 초원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소를 잡아다 억지로 사료를 먹여 키워 그렇게 만든 것뿐이다. 소에 대한 분노는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향해야지 결코 국적이 다른 소들에게 향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광우병 해결책은, 만일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동물성 사료가 문제라면 해답은 간단하다. 소를 놓아기르든지 그런 사료를 안 먹이면 될 것이다.

올해는 십이지간의 둘째라는 소의 해다. 십이지간 고사로만 보면 소는 꽤 억울한 동물이다. 원래 소가 그 특유의 끈기와 우직함으로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달했는데 그의 머리에 타고 있던 쥐가 갑자기 결승점에 먼저 뛰어내려 일등 자리를 빼앗아버린 것이다. 이건 분명 심각한 반칙 행위이지만 신은 그것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도록 한다. 혹자는 쥐의 행위를 지혜롭다고 칭찬까지 한다. 그러나 나의 견해는 지금이라도 소에게 챔피언 자리를 돌려주는 게 온당하다는 것이다. 신까지 정의를 저버리고 처세를 옹호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말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나. 박목월 시인의 ‘송아지’ 노래를 보면 얼룩소가 등장한다. ‘얼룩빼기 황소,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만일 이들이 현대의 시인이었다면 당연히 얼룩소는 점박이 무늬 젖소가 맞다. 그러나 이 시인들이 이 말을 사용한 1930년대에는 우리나라에 젖소가 거의 없었다. 이 두 노래에 나오는 얼룩소는 우리 토종 ‘칡소’를 가리킨다. 예전에 노래로 불렸을 정도로 흔했던 그 호피 무늬의 강인한 칡소들은 일제 치하의 한우 모색 통일화라는 이름으로 거의 멸종해 버리고 지금은 몇몇 뜻있는 분들에 의해 실낱같은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는 광우병, 복제 소 등등 최근 몇 년 사이 불거진 죄 없는 소와 죄 많은 인간들 사이의 핫이슈들이 일단 물밑으로 가라앉는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활화산임은 분명하다. 이 모든 것이 소를 생물이 아닌 단순한 우유나 육류 생산기계로 바라보는 데서 비롯한 일이다. 소의 해가 시작되는 올해 초, 소를 제발 하나의 생명의 무게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면 무리한 기대일까? 이런 순진한 생각들을 하기엔 역시 우보행(牛步行)이 제격이다.

최종욱/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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