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과학칼럼
‘얼마나 지나야 동물원의 침팬지가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요?’ 내 진화론 강의는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백만 년’, ‘오백만 년’을 외치는 청중들에게 싱거운 대답이 기다리고 있다. ‘결코 진화할 수 없다’는 것. 진화론을 어설프게 알거나 생명이 신에 의해 그 종류대로 창조됐다고 믿는 이들에게, 진화의 진실을 알리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질문을 나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1859년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연선택’이라는 진화 메커니즘과, 나무가 가지를 뻗듯이 생명이 진화한다는 원리를 통해 자연 속에서 인간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진화론에서, 우리와 침팬지는 약 500만 년 전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한 사촌지간이다. 잔가지들을 타고 거슬러 내려가면 곧 줄기를 만나고 이내 뿌리에 닿듯이, 다윈은 자연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나무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인간은 하나의 잔가지일 뿐이다.
창조론이 대세였던 19세기 후반의 서양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불온했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불온과 도발은 독자를 끌어 모으는 법. <종의 기원> 초판 1250부는 출간 당일 매진됐고,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13년 동안 다섯 번이나 판이 바뀌었으며, 마침내 저자의 입에서 ‘일일 노동자도 사 볼 수 있도록 책값을 내리자’는 제안까지 나올 정도였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다윈과 존 머레이 출판사는 불온서적 마케팅과 보급판 도입의 선구인 셈이다. 올해는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일 뿐만 아니라 다윈 탄생 200주년으로, 전세계가 벽두부터 그의 사상과 인생을 조명하기에 바쁘다.
다윈의 발상은 여전히 위험한 구석이 있다. 특히, 아직도 위로부터의 창조를 믿는 이들에게 아래로부터의 진화는 오만불손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불온한 발상이 어느덧 ‘참 좋은 생각’으로 진화해 왔다. 철학·심리학·경제학·의학의 경우처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분야에서 이제 진화론은 과거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현재의 작업대다.
개미와 인간 세계에서 공히 발견되는 이타성의 진화를 설명하는 진화윤리학,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이해를 다윈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 진화심리학, 게임이론과 진화론의 행복한 만남이 계속 진행 중인 진화경제학, 진화의 원리로 병을 이해하고 고쳐보려는 다윈 의학까지, 다윈의 생각은 150년이라는 짧은 지식의 역사에서 생산적인 종분화를 거듭했다. 심지어 종교 현상마저도 진화의 산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최근에 큰 인기다.
하지만 지금 내게 다윈의 사상과 생애를 기념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를 제시하라 한다면, 나는 들에 핀 한 송이 꽃을 보라고 하고 싶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수억 번 도는 동안 우리 곁에 살아남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이 미물은, 다윈에게 그러했듯이 오늘 내게도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장엄함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 장엄함은 우리 인간도 생명의 나무에서 죽은 가지가 될 수 있다는, 더 나아가 다른 잔가지들도 썩게 만들 수 있다는 엄숙함에 이른다. 생명의 연대를 역설하는 진화론을 오늘날 우리가 다시 한번 깊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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