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효순칼럼] 아소 총리의 골프장 (2)

등록 2009-01-13 20:32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또 그냥 지나갔다. 예상했던 대로지만 뒷맛이 씁쓰레하다. 주초에 있은 이명박 대통령과 아소 다로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과거사를 배제한 채 일사천리로 넘어갔다. 무엇보다도 세계적 경제위기에서 한국의 처지가 옹색해졌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나 무역수지 대책에서 일본의 시혜적 조처를 바랄 수밖에 없는 우리 정부로서는 아소 총리의 비위를 거스르는 얘기를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경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일본·중국이 각기 넘어야 할 물결의 높이가 비교적 같은 수준이었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따지고 들었을까? 현정부가 벌이는 역사교과서 강제수정, 과거사위 통폐합 추진과 핵심 지지세력인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등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고 단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소 가문은 19세기 말부터 후쿠오카현의 탄광사업으로 축재를 해 벌떡 일어났다. 일제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징용돼 탄광 등지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아소광업이 운영하던 탄광은 그중에서도 노동조건이 열악했던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은 아소의 방한을 앞두고 아소광업의 강제노동 실태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민주당의 이런 전략이 아소의 역사인식이나 자질 문제를 부각시켜 중의원 해산과 총선을 앞당기려는 의도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일본의 어두운 과거를 정리해 이웃나라들과 관계를 개선해 보려는 충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마시타 야스오 민주당 참의원 의원은 지난 7일 아소 총리가 연합군 포로의 아소광업 사역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점을 들어 조선인의 징용 유무도 명확히 하라고 다그쳤다. 그는 “과거를 검증해서 역사에 성실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양국의 진정한 우호 촉진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아소는 “전쟁 이전과 전쟁 기간 조선반도 출신자의 입국 경위를 명확히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전제하고, “아소광업이 경영하던 탄광에서 조선반도 출신자가 노동에 종사했다는 것은 회사의 관계자료 등이 있어 이미 명확하게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고 넘어갔다. 그의 발언의 핵심은 일자리를 구하고자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 있기에 강제동원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강제징용이 아니라 ‘노동에 종사했을’ 뿐이라며 강제동원을 솔직하게 시인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죄를 한다는 발상이 머릿속에 자리잡을 리도 없는 것이다.

일본 야당의 수뇌부가 나서서 아소의 과거사 인식을 따졌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미래를 위한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내세우며 과거사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정상회담과 일본 의회는 무대가 다르다. 아소광업의 징용 희생자들에 대해 뭔가 할 말씀이 없느냐고 완곡하게 물었어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아소의 총리 재임 기간에 그의 입을 통해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 발언을 들을 기회는 물건너갔다.

이 대통령은 그 대신 한국·일본 두 나라 재계 인사를 포함한 골프 모임을 제의했다. 그것이 실질적 협력을 위한 ‘가슴을 통한 진전’이라고 의미 부여까지 했다. 지난번 이 난에서 썼듯이 조선인 징용자들의 한이 서려 있는 요시쿠마탄광 자리에 ‘아소이즈카 골프클럽’이 들어섰다. 클럽 이사장은 아소 총리가 맡고 있다. 이왕 골프 얘기가 나왔으니 내친김에 아소의 골프장에서 즐기며 한-일 신시대를 여는 것은 어떤가? 아직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징용 희생자 유골을 딛고서.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