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지역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이명박 정부가 새해 초 경인운하 건설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말 ‘경제 살리기’로 포장한 ‘4대강 정비사업’ 착공식을 한 데 이은 경부대운하 살리기 공세 2탄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경인운하지만, 이를 재개하는 정부의 논리는 ‘조작과 억지’로 가득 차 있다. 비용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서 빼고, 편익은 관련성이 없거나 적은 것까지 끼워 넣었다. 국책사업의 타당성을 ‘인증’하는 기관으로 인식돼온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인운하 보고서를 보면, 정권의 입맛에 맞게 논리를 꿰어 맞췄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연구원은 2003년 당시 건설교통부의 의뢰 때는 비용 대비 편익을 0.81로 분석했으나, 이번에는 1.07로 경제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요 예측 조사도 하지 않고 기존의 자료를 새로 가공했다. 이렇게 다양한 변칙 수단을 동원해 경제성이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낸 점을 볼 때, 이 보고서의 결론이 나온 배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올해 들어 첫 지역방문 일정으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전남 나주 영산강 포구를 찾았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 주민이 “영산강이 과거 수심이 10m였고 비가 많이 오면 11m까지 올랐는데 지금은 1m도 안 돼 피해를 많이 보고 있다”고 하자, “그래서 준설을 빨리 해야 한다. 4대강의 수심이 5~10m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도산 선생은 자신의 저서에서 강을 살리자고 강조하고 있다”며 이른바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까지 끌어들였다.
국민의 민원을 듣는 형식이었지만, 이 대화에는 대운하 건설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집념이 그대로 드러난다. 1m도 안 되는 수심을 5~10m가 되게 하려면 준설을 깊이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또 준설만 해서는 수위가 같이 내려가기 때문에 배를 띄울 수심 확보가 어렵다. 따라서 물을 가둘 콘크리트 보를 건설해야 한다. 이 정도 되면 한강과 낙동강을 준설하고, 10개 가까운 보를 만들어 수심 6m를 확보하고, 백두대간에 터널을 뚫어 두 강을 연결한다는 한반도대운하와 그림이 겹쳐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대통령의 말은 지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 비판에 재갈을 물리고 압박을 계속해온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공무원들이 그의 말을 거스르거나 흘려들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지방재정 수입과 지역개발을 우선시해온 지방정부로서는 중앙정부가 요구하지 않아도 지역 토목사업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인천시는 최근 경인운하 건설계획이 나오자마자 공항항만물류국 안에 전담팀인 경인운하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운하가 건설되면 운하 주변의 땅값이 오르면서 개발이 활성화하고, 인천경제자유구역의 청라지구와 인근의 검단 신도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알다시피 한반도대운하는 홍수·식수·환경 등의 문제점을 해결할 뾰족수가 나오지 않아 사실상 국민 합의로 폐기된 안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한번도 명시적으로 한반도대운하 포기를 선언하지 않았다. 그리고 틈만 나면 대운하 군불때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의 의중을 간파한 관료들도 이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전문가들이 운하를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는 토목공사는 일단 착공하면 중단이나 복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운하에 배를 띄우는 것은 강의 물이겠지만, 정권을 부양하는 것은 민심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김학준 지역부문 편집장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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