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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드라마보다 막장, 대법관

등록 2009-03-09 19:02수정 2018-05-11 14:59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칼럼
왜 <꽃보다 남자>를 보느냐고, 왜 <아내의 유혹>을 보느냐고 비난하지 말길 바란다.

나도 본다. 키 크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사랑에 올인하는 재벌 아들과 결혼할 꿈을 꾸는 처지도 아닌데, 딸이 있어서 그런 사위를 얻을까 두리번거리는 것도 아닌데, 그냥 본다. 남편이 다른 여자랑 결혼하려고 임신한 아내를 바닷물에 빠뜨리고,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살아나 남의 집 딸로 둔갑해 몇 달 만에 다시 그 남편과 결혼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본다.

서민들은 결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꿈꾼다. 세탁소집 딸이 재벌 아들과 맺어지기를, 악을 저지른 자를 응징하고 밟아 버리기를, 그것은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어서다. 상식적으로 이것저것 따지고 볼 필요가 없다. 막장 드라마라기보다는 묻지마 드라마다. 예쁜 것 보니까 눈이 즐거울 뿐이고, 악을 응징하는 것 보니까 속이 시원할 뿐이고, 그게 전부다.

국민이 드라마를 보며 꿈을 꾸고 있는 사이에 드라마보다 더한 막장 드라마가 사법부에서 펼쳐지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이 주역이다. 지금까지 나온 보도를 종합하면 정말 이 사람이 법조인의 양식이나 직업윤리가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전화로, 이메일로, 회식 자리에서, 촛불집회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 현행법대로 처리하라고 여러 번 독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것이 몇몇 판사들에 의해 뒤늦게 드러나자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서 통상적인 업무처리를 당부한 것이고 법대로 하라는 주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인사권자이고 평점을 매기는 위치에 있는 법원장이 평판사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한 것을 강압으로 느끼지 않을 판사가 몇이나 될까. 이메일에 대법원장 이름까지 거명하였으니 신영철 대법관이 뭐를 믿고 이렇게 당당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의 법원과 같은 독립적 구조로 되어 있다.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제청이 계류되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처한다는 것은 일반인들도 느끼는 상식이다. 자신이 위헌심판 제청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결과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피고에게 유리한 해석이 나올지 모르는 사안을 서둘러 판결을 내리는 법은 없다.

대다수의 국민은 입에 밥 들어가고 직장만 있으면 정치논리에 순응하고 산다. 대다수 법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조직구조상 현실 정치사안에 대해 앞장서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지킬 것은 지키면서 크게 나서서 영합하지는 않고 맡겨진 재판에서 재량을 발휘하고 지혜를 모아 판결을 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법부의 권위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사안이 생기면 비로소 움직인다. 몇 차례의 사법 파동도 모두 직업적인 권위를 떨어뜨리게 한 것과 관련해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그런 사법 파동의 조짐이 보인다.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바로 신영철 대법관처럼 정치논리에 앞장서서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법조인들 때문이다. 그래도 사법부의 명예가 아직도 지켜지고 국민이 행여나 하고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은 소수의 법관들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법원발 막장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자진용퇴하라는 내부의 소리에다, 아무리 맥을 못 추는 야당이지만 탄핵을 하겠다고 벼르는데, 주인공 신영철 대법관은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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