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북한에서 사업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침이 마를 정도로 애간장을 태운다. 개성공단에 입주해서 사업하는 기업인들의 마음이 요즈음 그럴 것이다.
대북 투자사업의 어려움은 일찍이 저명한 총련 사업가였던 사쿠라그룹의 전진식이 토로한 바 있다. 전진식은 1973년 처음으로 평양에 들어간 이래 90회나 방북했으니 북한 경제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던 인물이다. 간암을 앓던 그는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94년 일본 월간지 <세계>와의 인터뷰에서 작심한 듯 쓴소리를 했다. 그는 경제 개방으로 가지 않으면 세계의 어느 나라도 지탱하기 어렵다고 전제하고 “공화국의 가장 큰 문제는 비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나쁜 의미에서의 자존심’ 아니 ‘독단’이라고 꼬집었다.
북한이 개성공단 남쪽 사업자들을 볼모 잡듯 하는 직접적 원인은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대한 반발이다. 남은 기본적으로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북은 ‘북침용 전쟁 시나리오’라고 단정한다. 북이 남북 군사통신선을 끊고 남쪽 민항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상식 이하의 대응으로 긴장 수위를 높여가는 것은 이런 인식 때문이다.
키리졸브의 전신은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팀스피리트 훈련으로 거슬러 오른다. 미국은 냉전 대치가 절정기에 이른 50년대 중반부터 소련에 대해 위험한 영공침투 스파이 작전을 시작했다. 고도의 전자첩보 장치를 갖춘 장거리 폭격기를 수시로 띄워 지상의 군사시설을 탐지하는 것이다. 이른바 ‘여우사냥’ ‘술래잡기’ 게임이다. 소련의 방공부대는 이상한 비행물체가 탐지되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레이더와 미사일 기지가 실전상황에 들어가고 전폭기가 긴급히 발진하며, 군 부대 사이 교신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미국의 첩보기는 고공을 유유히 비행하면서 소련의 방공태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약점은 무엇인지 탐지하며 자료를 쌓아간다. 대한항공 여객기가 83년 캄차카반도 쪽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격추된 비극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미국 첩보기가 캄차카 쪽 영공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술래잡기를 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해진 소련 방공군이 일을 저지른 것이다.
미국은 군사력에서 소련과 비교가 되지 않는 북한에 대해서도 유사한 작전을 수행했다.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등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연습은 북한 군부의 신경을 더욱 건드렸다. 북한은 굳건한 군사태세를 과시하려고 대규모 대항훈련을 벌였다. 경제사정이 그나마 괜찮았을 때는 감당할 만했는데 경제가 거덜나고서는 엄청난 부담이 됐다. 한-미 군사훈련이 노리는 목표의 하나가 북한의 비축 전쟁물자를 최대한 고갈시키는 데 있음은 미군도 부인하지 않는다. 북한 공군기의 대응출격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연료부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다.
이제 키리졸브 훈련의 유용성을 따져볼 때가 왔다. 냉전체제는 끝났고 북의 경제현실은 위협적 군사력 유지를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북이 핵실험을 했지만 그것을 실전에 배치하려면 핵탄두 소형화와 미사일 성능 향상 등 난제들이 남아 있다. 설사 그것을 해결한대도 즉각적인 파멸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그 핵무기는 무용지물이다. 북한에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현희도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납치문제의 해결을 고민해 보자고 말하지 않았는가?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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