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손석춘칼럼
존경받지 못하는 국민.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란다. 독자들에게 생게망게하게 들리겠지만 청와대 공식 발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4만달러가 되더라도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국민이나 국가가 되지 않을까 가장 두렵단다.
어떤가. 국민의 존엄성을 걱정하는 대통령의 정성에 감동해야 옳을까. 미처 몰랐다며 사과라도 할까. 대통령의 말을 기자들에게 사뭇 진지하게 전한 청와대 깜냥도 궁금하다.
대통령 말은 국가브랜드위원회 첫 자리에서 나왔다. 대통령은 ‘브랜드’를 높이는 게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도움이 된다고 부르댔다. 물론 ‘브랜드 시대’나 ‘글로벌 마케팅’ 또는 ‘네이밍’ 따위의 영어를 즐겨 쓰는 윤똑똑이들에게 대통령 발언은 ‘옥음’이었을 터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권장하는 ‘구조조정’으로 일터에서 퇴출당한 국민에겐 어떻게 들렸을까. 생존권을 지키려고 옥상 망루에 올라간 지 하루 만에 참혹한 주검으로 돌아온 가장의 유족들은 대통령 말을 어떻게 들었을까.
위원장이 저 소문난 ‘신자유주의 대학총장’ 어윤대인 탓일까. 국가브랜드위원회도 뜬금없기로 대통령과 어금지금하다.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이 ‘국가 비전’이란다. 덴마크 수준의 ‘국격’을 갖추겠다고 기염이다. 대통령은 선심 쓰듯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 ‘브랜드’ 논리로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브랜드’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은 그것이 한낱 외형의 문제가 아님을 통찰했다. 고갱이가 될 가치로 내실을 다지지 않으면 천문학적 돈으로 치장한 ‘브랜딩 전략’을 세워도 실패한다는 게 최근의 연구 성과다. 외부 ‘이미지’만 높일 게 아니라 내부 구성원에게 자부심을 줌으로써 결속력 다지는 걸 ‘성공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그 과정 없이 아무리 ‘배려와 사랑’을 외쳐도, 국민 혈세를 쏟아부어도, 나라 안팎의 ‘브랜드 교수’들 배만 불릴 뿐이다. 경찰 투입으로 국민 5명이 숨져도 되술래잡는 국가에 누가 자부심을 느낄까. 덴마크와 달리 사회보장이 전혀 없는 나라, 그럼에도 최저임금을 깎겠다는 대통령에게 부닐며 ‘배려하고 사랑받는 대한민국’을 노래하는 저들을 무엇이라 부를까.
그래서다. 이미 세계적으로 파산된 가치인 ‘신자유주의’에 더해 공안통치를 일삼는 대통령이 참으로 ‘국가 브랜드’를 높이겠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있다. 성찰이다. 교회 장로의 문법으로 말하면 ‘회개’다.
장로로서 자신을 톺아보기 바란다. 후보 시절 국민의 위대성을 들먹이지 않았던가. 취임 때 국민을 섬기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모두 “선거 때 무슨 말을 못 하느냐” 따위의 천박한 사고에서 나온 거짓말인가?
국민소득 3만달러, 4만달러가 되어도 국민이 존경받지 못하는 게 가장 두렵다는 대통령에게 쓴웃음으로 쓴다. 3만달러 아니어도 좋다. 경제 살려라. 지금도 살찐 부자들의 경제가 아니다. 국민 대다수인 민중의 경제적 고통을 보듬어 가라.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 옳다. 임금 삭감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릴 때다. 내수 중심으로 방향 전환이 한국 경제가 살아나는 길이다.
‘존경받지 못하는 국민’은 더더욱 정치인 이명박이 우려할 문제가 아니다. ‘브랜드’ 타령으로 혈세를 탕진할 일도 아니다. 진실로 이르니 대통령 자신부터 국민을 존경하라. 아니, 존경까지 바라지 않는다. 다만, 더는 죽이지 말라. 지금 이 순간도 오열하고 있는 철거민 유족을 겸손하게 찾아가라. 그게 보수와 진보를 떠나 국가의 품격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길이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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