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인턴 두달을 못채우고 사직서 낸 너
다시 시작한 일이 사랑방 영화 상영
그 일 마치면서 단편영화 홍보일
하고픈 일 하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지난해 10월에 지도교수님 추천으로 네가 인턴사원이 되어 출근하던 날, 새 옷 한 벌 못 해주어 엄마는 쪼끔 미안했단다. 사실 새 옷을 사 준 적이 별로 없구나. 그런데도 너는 어려서부터 누군가에게 물려받아 입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그건 지금도 그렇지. ‘아름다운 가게’에서 2천원, 3천원 주고 산 스웨터와 재킷이 올겨울 너의 훌륭한 외출복이었어.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데, 비록 인턴사원이긴 하지만 졸업 전에 일을 갖게 되어 엄마는 얼마나 기쁘던지. 더구나 네 전공과 관련된 일이라 더 그랬단다. 하지만 인턴급이라는 게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을 시키고 고작 교통비 정도에, 6개월 뒤에 다시 재계약하는 회사였다. 그러니 어떻게 회사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있었겠니. 언젠가부터 비정규직이니 임시직이니 하는 형태로 사람의 노동력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 일이 아무리 혹독해도 못 해낼 네가 아니라는 것은 엄마도 잘 알고 있었지만,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아닌지, 생각 좀 해 보자며 시간을 벌어 보려고 했단다. 그런데 두 달을 못 채우고 결국 너는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말았지.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하면 최소한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런 네 말에 엄마도 수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리고 네가 다시 하게 된 일은 사랑방 영화 상영 일이었다. 이미 학생 때의 2년여 경험을 인정받아 이번에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경기도 벽지를 찾아다니며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영화를 상영해 드리는 일이었다. 처음 두 해 동안은 어린이 공부방도 같이 진행했다지. 경기도 연천, 가평, 평택, 포천, 동두천, 안성 등지의 외진 마을에 네가 처음 다녀온 뒤의 흥분을 엄마는 기억하고 있다. 서울에서만 자라고 고작 강릉 외가댁에나 가본 너에게, 그곳을 찾아가는 일이 우선 공부가 아니었겠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할머니 손에 자라는 아이들, 일터에 가신 부모님 말고는 돌보아줄 사람이 없어 이른 아침부터 종일토록 공부방에서 지내는 어린이들에게 큰 프로젝트 화면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온 날, 네 얼굴은 무척 상기되었지. 때로는 감동하여 목이 메기도 하면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지가 한 40년도 더 되었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마워하시던지, 돈을 받고 일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마음을 쓰는 네가 참 이뻤단다. 그 일을 마칠 무렵, 지난 4년간 자원활동을 하던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단편영화 홍보 일을 해 보고 싶다고 네가 말했다. 만화를 좋아하다가 애니메이션, 영화로 관심이 옮겨져 재수하던 시절 혼자 여성영화제, 노동영화제를 찾아다니던 네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찾아간 곳이 독립영화협회였지. 자원활동가가 되고 싶다고. 처음 2년은 매주 하루씩 찾아가 협회 일을 도왔고, 그 뒤 그 일을 2년이나 더 하더구나. 너를 따라 정동진영화제에 가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단편영화를 보던 기억이 문득 나는구나. 그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너에게 틀림없이 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엄마는 믿는다.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자발적으로 힘든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네가 가끔 할 때면, 엄마도 깊이 감동한단다. 젊은이들이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높은 급여를 받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너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네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그게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일이겠니. 어떤 세대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풍족한 세상을 만났다고 하지만, 너희들 세대는 다른 세대가 겪지 못한 ‘특별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일이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일할 곳’이 없어 고초를 겪고 있는지, 너도 잘 알고 있잖니. 어제는 네 첫 명함이 나왔다고 멋쩍어하며 내밀었어. 어쨌든 우리 막내가 이렇게 컸구나.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단다. 심현숙 서울 강북구 우이동
다시 시작한 일이 사랑방 영화 상영
그 일 마치면서 단편영화 홍보일
하고픈 일 하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지난해 10월에 지도교수님 추천으로 네가 인턴사원이 되어 출근하던 날, 새 옷 한 벌 못 해주어 엄마는 쪼끔 미안했단다. 사실 새 옷을 사 준 적이 별로 없구나. 그런데도 너는 어려서부터 누군가에게 물려받아 입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그건 지금도 그렇지. ‘아름다운 가게’에서 2천원, 3천원 주고 산 스웨터와 재킷이 올겨울 너의 훌륭한 외출복이었어.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데, 비록 인턴사원이긴 하지만 졸업 전에 일을 갖게 되어 엄마는 얼마나 기쁘던지. 더구나 네 전공과 관련된 일이라 더 그랬단다. 하지만 인턴급이라는 게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을 시키고 고작 교통비 정도에, 6개월 뒤에 다시 재계약하는 회사였다. 그러니 어떻게 회사에 대한 믿음이 생길 수 있었겠니. 언젠가부터 비정규직이니 임시직이니 하는 형태로 사람의 노동력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 일이 아무리 혹독해도 못 해낼 네가 아니라는 것은 엄마도 잘 알고 있었지만,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아닌지, 생각 좀 해 보자며 시간을 벌어 보려고 했단다. 그런데 두 달을 못 채우고 결국 너는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말았지.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하면 최소한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런 네 말에 엄마도 수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리고 네가 다시 하게 된 일은 사랑방 영화 상영 일이었다. 이미 학생 때의 2년여 경험을 인정받아 이번에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경기도 벽지를 찾아다니며 마을회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영화를 상영해 드리는 일이었다. 처음 두 해 동안은 어린이 공부방도 같이 진행했다지. 경기도 연천, 가평, 평택, 포천, 동두천, 안성 등지의 외진 마을에 네가 처음 다녀온 뒤의 흥분을 엄마는 기억하고 있다. 서울에서만 자라고 고작 강릉 외가댁에나 가본 너에게, 그곳을 찾아가는 일이 우선 공부가 아니었겠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할머니 손에 자라는 아이들, 일터에 가신 부모님 말고는 돌보아줄 사람이 없어 이른 아침부터 종일토록 공부방에서 지내는 어린이들에게 큰 프로젝트 화면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온 날, 네 얼굴은 무척 상기되었지. 때로는 감동하여 목이 메기도 하면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지가 한 40년도 더 되었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고마워하시던지, 돈을 받고 일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했는데, 그렇게 마음을 쓰는 네가 참 이뻤단다. 그 일을 마칠 무렵, 지난 4년간 자원활동을 하던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단편영화 홍보 일을 해 보고 싶다고 네가 말했다. 만화를 좋아하다가 애니메이션, 영화로 관심이 옮겨져 재수하던 시절 혼자 여성영화제, 노동영화제를 찾아다니던 네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찾아간 곳이 독립영화협회였지. 자원활동가가 되고 싶다고. 처음 2년은 매주 하루씩 찾아가 협회 일을 도왔고, 그 뒤 그 일을 2년이나 더 하더구나. 너를 따라 정동진영화제에 가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단편영화를 보던 기억이 문득 나는구나. 그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너에게 틀림없이 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엄마는 믿는다.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자발적으로 힘든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네가 가끔 할 때면, 엄마도 깊이 감동한단다. 젊은이들이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높은 급여를 받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너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네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그게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일이겠니. 어떤 세대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풍족한 세상을 만났다고 하지만, 너희들 세대는 다른 세대가 겪지 못한 ‘특별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일이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일할 곳’이 없어 고초를 겪고 있는지, 너도 잘 알고 있잖니. 어제는 네 첫 명함이 나왔다고 멋쩍어하며 내밀었어. 어쨌든 우리 막내가 이렇게 컸구나. 엄마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단다. 심현숙 서울 강북구 우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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