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최초의 인공위성은 옛소련이 1957년 10월4일에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다. 지구 궤도를 돌다가 92일 만에 운명을 다했다. 러시아어로 위성을 뜻하는 스푸트니크가 현대사의 중요 사건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발사 성공이라는 사실 못지않게 그것이 가져온 후폭풍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른바 ‘스푸트니크 충격’이다. 전율할 정도로 공포를 느낀 나라는 누구보다도 미국이었다. 지구 궤도에 위성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수천㎞ 떨어진 가상 목표에 핵탄두나 재래 탄두를 투하할 수 있는 미사일 보유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음해 항공우주국(나사)을 설립하고 과학기술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집합 등 추상적 수학 개념을 조기에 교육하기 위해 수학·과학의 기초 교육과정도 크게 바꾸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는 유엔 안보리 긴급 소집 등 즉각적 파장을 몰고 왔다. 가장 부산하게 움직인 나라는 일본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 전략 공군의 융단폭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던 상황이 재현된 건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우리 내부에서도 ‘미사일 주권론’을 내세우며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착수를 주장하는 소리가 나온다. 사정거리가 긴 미사일을 보유한다면 우리의 가상 목표는 러시아나 중국이 되는가? 흥분하기에 앞서 이번 사태가 얼마나 충격적인지를 여러 측면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의 군사적 능력 실체이다. 북한이 위성의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지만, 인공위성이건 모의 탄두이건 탑재물과 발사체가 바다에 추락했다고 단정한 한국과 미국의 판정에 훨씬 무게가 쏠린다. 전략 핵병기란 핵탄두와 운반 수단이 제대로 결합될 때만 성립한다. 전략 폭격기, 지상 발사 대륙간탄도탄, 잠수함 발사 탄도탄 등 세 가지 운반 수단 가운데 북한이 기를 쓰고 노리는 대상은 지상 발사 대륙간탄도탄이다. 이번 실험에서 사정거리 늘리기에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하더라도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설사 탄도탄 개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명중도의 향상이나 핵탄두의 소형화는 따로 해결해야 할 난제이다.
둘째, 북한의 군사적 충동만이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유일한 요인인지 물어야 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곳이 보유한 핵병기 수준에 비교하면 북한이 그렇게 눈길을 끌고 싶어 하는 핵전력은 원시적이다. 일본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가장 많이 받을 정도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고 있으며 위성 발사 기술도 최고 수준급이다. 일본의 일부 세력이 군비 증강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는 북한의 무모한 행위를 즐기는 느낌마저 준다. 한반도 북쪽이 당한 식민 지배의 역사적 청산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은 흔적도 없이 잊혀지고, 일본이 피해자의 지위를 독점한 듯한 상황이 지속된다.
셋째, 북한이 ‘대량파괴무기’ 획득에 편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근본 배경이다. 남북한은 1970년대에 서로 안보 불안을 느껴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다. 조지 부시 1세 미국 대통령이 91년 냉전 종식이라는 국제 정세의 큰 변화를 반영해 전세계적으로 지상·해상에 배치한 전술 핵무기의 철수를 발표하기 전까지 주한미군에는 수백기의 핵무기가 상시 저장돼 있었다. 소련이 90년 한국과의 수교 발표에 앞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을 평양에 보내 이해를 구하려 했을 때 북한의 김영남 외교부장은 동맹이 깨졌으니 어떤 무기도 구애받지 않고 만들겠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당시 4강의 교차 수교가 거론됐지만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여전히 미수교 상태다. 고립무원 속에 증폭되는 북한의 공포감을 달래주지 않으면 핵·미사일 위기는 근치하기가 쉽지 않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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