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서울대 교수 수의미생물학
과학칼럼
신종 인플루엔자(플루) 바이러스(H1N1)가 출현해 온 세계를 불안으로 몰고 있다. 13일 현재 33개 나라에서 5728명의 환자가 발생해 61명이 숨졌다. 멕시코를 빼고는 사망자가 매우 적고 감염자의 만성질병 요인도 사망의 복합 원인이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신종 바이러스의 병원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세계가 왜 이리 호들갑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신종 H1N1 바이러스는 지구상에 없던 새로운 변종이다. 일반 독감인 계절성 인플루엔자를 일으키는 H1N1 바이러스도 있지만, 신종 H1N1 바이러스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다. 따라서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이어서 사람들한테 면역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 그만큼 쉽게 감염되고 피해가 가중된다고 하겠다. 겨울철마다 나타나는 독감은 전염력이 5~15%인 데 견줘, 이번 신종 바이러스는 22~33%일 정도로 전염력이 높다. 그러나 병원성이 낮아 세계보건기구(WHO)도 최고 단계의 경보 발령은 유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시 전염력이 높은 신종 바이러스와 치사율이 아주 높은 바이러스의 특성이 합쳐진다면? 아니면 신종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강한 병원성으로 무장한 채 다시 나타난다면? 온 세계가 우려하는 대유행 인플루엔자가 출현할 것인가? 지금으로선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고, 반드시 그리된다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확산 추세를 막지 못한다면 대유행 인플루엔자 발생의 위험은 한층 더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이후 지구상엔 1918년 스페인 독감을 비롯해 세 번의 대유행 인플루엔자가 발생했고, 그때마다 처음엔 모두 병원성이 약했다는 사실이 우리한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약한 성질의 것이 유행하다가 어느 시기에 급격히 독한 성질로 변이돼 본격 피해를 일으켰으며, 대개 첫 번째 유행에서 6~12개월 지나 두 번째 대규모 피해가 나타나곤 했다.
그러면 이런 바이러스에 맞서는 무기는 없는가? 타미플루는 증상이 나타난 뒤 48시간 안에 복용해야 효과가 있고 안 그러면 소용이 없다. 신종 플루 또는 미래의 대유행 인플루엔자가 폭넓게 퍼진다면 일반 감기와 독감에 더해 신종 플루까지 함께 발생해 사회 혼란은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감기 또는 독감과 신종 플루를 감염 초기에 구별해 타미플루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초기에 감별 진단을 할 수 있는 ‘신속 진단 키트’가 필요하다. 타미플루 외에 예방 백신은 우리가 지닐 수 있는 최선의 무기다. 신종의 대유행 인플루엔자가 출현하기 전에 신속한 백신 생산 시스템과 생산 기술을 갖추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비해 정부와 녹십자가 독감백신 생산시설을 전남 화순에 건설해 시험 가동중에 있다. 긴급상황 때 그 시설에서 실제로 대유행 인플루엔자에 맞서는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모든 체제를 갖춰야 할 것이다.
지나친 공포나 예민함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총체적인 계획 아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준비하는 침착한 대응 태세가 중요하지, 신종 바이러스를 피하려 돼지고기·닭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우스꽝스런 행태는 우리의 과학 후진성만 드러낼 뿐이다.
김재홍 서울대 교수 수의미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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