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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춘칼럼] 오월의 정부

등록 2009-05-18 21:54수정 2018-05-11 16:37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손석춘칼럼
오월은 눈부시다. 봄의 절정이다. 다만 그해 오월은 특별했다. 새벽 4시. 굉음으로 질주해 온 탱크가 눈앞에 다가섰다. 중무장 헬기도 떴다. 자동화기와 수류탄으로 무장한 ‘특공대’가 야수처럼 들이닥쳤다. ‘목표’가 누구일까. 민주주의를 목 놓아 부르던 민주 시민들이다.

1980년 오월의 핏빛 진실이다. 한 오월단체는 “작전 개시 1시간30분 만에 도청 진압이 완료되면서 열흘간에 걸친 민중항쟁도 참담한 최후의 막을 내렸다”고 서술했다. 이해할 수 있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쓸 수 없다. 탱크─중무장 헬기─자동화기로 포위하고 난입해 들어오는 공수부대와 맞서 민주 시민들이 전남도청에서 항전한 ‘1시간30분’은, 아니 한순간 한순간은 영원에 잇닿아 있기 때문이다.

탱크가 저 멀리 몰려올 때,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오월의 투사들은 장렬한 최후를 선택했다. 항쟁의 위대한 깃발을 내릴 수 없어서다. 실제로 바로 그 결사항전이 있었기에 1980년대 내내 민주화운동이 여울여울 타올랐다. 6월항쟁 앞에 전두환 일당이 ‘친위 쿠데타’를 포기한 까닭도 그날 온몸으로 보여준 민중의 영웅적 투쟁 때문이다.

그런데 보라. 바로 그 ‘성지’를 헐어버린단다. 생게망게하게도 일부 오월단체가 ‘완장’을 차고 있다. 오월단체 사이에 정면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물론, 내세운 명분은 있다. 5·18 정신을 과거로만 기념할 게 아니라 계승이 중요하단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곳을 헐어 ‘아시아 문화의 전당’을 지어야 꼭 ‘계승’할 수 있는가. 대체 계승이란, 아니 그 이전에 5·18 정신이란 무엇인가.

물음을 바꿔보자. 최후까지 도청을 지킨 민주 시민들이 꿈꾸던 정부는 무엇이었을까.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였을까.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고 부익부 빈익빈이 더 커져간 나라, 자살률 1위에 출산율 꼴찌의 나라였을까. 아니다. 하물며 이명박 정부였을까. 이 정권이 들어선 뒤 이른바 ‘보수단체’들이 오월을 바라보는 눈은 더 살천스럽다. 공개 토론회에 나와 “이제 광주사태에서 민주화운동의 가면을 벗겨야 하는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고 부르대는 ‘보수단체 대표’만이 아니다. “광주는 화염병이 난무하고 공수부대를 공격하는 폭력의 백화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민주화운동이 됐다”고 부르대는 ‘평론가’도 있다. “1980년 국가의 혼란을 수습했던 전두환 장군”에 찬가를 불러대는 대학교수도 있다.

무엇보다 통곡할 일은 오월의 도시, 광주의 분열이다. 오월단체가 분열을 막을 섟에 되레 ‘씨앗’이 되고 있다. 브레히트의 저 유명한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떠올리기도 사치스럽다. 곧장 말하자. 살아남은 자의 오욕이다.

더구나 표독스런 이명박 정권 앞에서 오월단체의 단결은 절실하다. 철거민의 숯주검과 화물연대 노동자의 찬 주검 앞에서 오월의 뜻은 사무친다. 저 오월의 열흘은 ‘대동 세상’으로 상징되듯 ‘직접민주주의’의 싱그러운 마당이었다. ‘민중의 자기통치’라는 민주주의 고갱이를 구현한 해방공간이었다. 1980년 분수대 앞에서 날마다 열린 집회와 토론은 2008년 촛불광장의 ‘원형’이었다. 그래서다. 빛고을 시민은 물론, 우리 모두 옷깃을 여미며 오월의 분수 앞에 설 때다. 왜 분수처럼 붉은 피 쏟으며 죽음을 선택했는가 물을 때다.

오월의 투사들이 그리던 민주정부, 오월의 정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선거혁명으로 그 정부를 이 땅에 벅벅이 내올 과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무다. 오월이 더 눈부신 까닭이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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