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한승수 국무총리가 지난 주말 전남 고흥군 소록도병원을 찾아가 한센병 환자와 가족에게 직접 사과했다는 기사가 18일치 신문에 사진과 함께 실렸다. 현직 총리가 한센병 환자 치료기관인 소록도병원을 방문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궁금한 사항이 여러가지 떠오른다. 총리의 나들이가 처음이라니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을까? 오랜 기간 막았던 요인들이 있다면 무엇일까?
수년 전 일본의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만든 한국의 과거사 청산작업 다큐를 보면서 비슷한 느낌이 든 적 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고 나서 징병·징용 등의 피해사례를 접수해 조사하는 과정을 다룬 내용이다. 당시 위원회 사무국장이던 최봉태 변호사가 희생자들의 유골이 모아진 곳에 가서 헌화를 하는 장면에서 이런 설명이 나왔다. 한국 정부 당국자가 피해자의 유골을 찾아 성묘를 하고 헌화를 하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설명을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사례들을 들자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비·시(B·C)급 전범 문제를 보자.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포로학대 등의 혐의로 연합국 군사재판에서 사형 984명을 포함해 5700명이 처벌을 받았다. 이 가운데 한국인이 148명, 처형된 사람만 23명에 이른다. 도쿄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일본인 에이(A)급 전범 7명보다 훨씬 많은 수다. 이 문제는 강제동원규명위에서 처음 다루었다.
그동안 철저히 외면당한 채 피해자나 유족들은 입 한 번 벙끗 못하고 한을 가슴속에 삭여야 했던 사건들이 일제 식민지 시절에만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얼마 전까지 피부로 겪었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좌우의 폭력 속에 집단으로 희생된 사람들,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몰려 수십년 옥살이를 하고 일가친척이 풍비박산된 사람들, 군대에 갔다가 ‘자살’이라는 통지와 함께 싸늘한 한 줌의 재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이런 사건들에 대한 조사를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한 것은 불과 수년 사이의 일이다. 일부 수구세력이 집요하게 주장하듯 ‘좌파 정권’의 음모인가? 아니다. 피해자와 유족들이 사회 일반의 무관심과 냉대를 무릅쓰고 처절하게 싸워서 얻어낸 성과라고 봐야 한다. 많은 제약 속에 한시적 기구로 출발해 활동했던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이 활동을 마칠 때가 다가온다. 접수한 사건들조차 처리하지 못한 것이 수두룩하지만, 현재의 정치지형으로 보아 활동 기간을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과거사 위원회들의 활동을 점검해 어떻게 성과를 활용하고 계승해 갈지도 정치권을 포함한 시민사회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사 권한의 근본적 제약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많은 자료들이 처음으로 축적됐다. 이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보존해서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홍보나 후세 교육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치스런 과거사를 밝히는 것은 결국 미래의 화해를 위해서다. 아픔을 넘어 공동체의 터전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한 화해 위령사업을 어떻게 할지도 주요한 과제다. 위원회 활동에 실무자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작가·영화감독·연출자 등 예술적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 조사기록을 보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릴 만한 소재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리라고 입을 모은다. 조선왕조의 왕릉만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북살스러운 ‘부의 유산’을 직시할 수 있어야 우리는 더 성숙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의 학살 터인 아우슈비츠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벌써 30년 전이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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