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지난해 가을, 파리에서 외계지성체 탐사(SETI) 학회가 열렸다. 이 분야 과학자뿐만 아니라 돌고래 전문가, 사회학자, 인류학자, 에스에프(SF) 작가들처럼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학회에 참가했다. 돌고래 전문가는 외계지성체를 찾기 전에 먼저 지구의 또다른 지적 생물인 돌고래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표를 해 눈길을 끌었다. 올해 5월에는 외계생명체 탐사 학회가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렸는데, 이곳에서도 학회에 정식으로 참가한 작가와 기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학술 발표가 끝난 뒤에는 작가를 위한 워크숍이 따로 열렸다.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트> 기자들도 참가해 발표를 경청하고 인터뷰도 했다. 정말 부러운 장면이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천문의 해’이다. 마침 나는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에서 문화분과위원장을 맡은 덕분에 여러 장르의 문화예술계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지난겨울에는 눈 쌓인 소백산천문대에서 에스에프 작가들과 천문학자들이 모여 산상 워크숍을 열었다. 우주 생명의 존재 가능성과 지구 접근 천체의 위험성에 대한 천문학자의 강연이 있었고, 에스에프 작가들과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한 가지 천문 관측 결과를 화두로 올려놓고서 함께 이야기를 붙여 이어가는 공동창작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작가들은 천문대 망원경뿐 아니라 식당 문고리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관찰을 했고 기록을 했다. 올가을에는 이분들이 소백산천문대에서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에스에프 단편들을 창작해 출판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봄에는 만화 작가들과 함께 보현산천문대를 찾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브레인스토밍’에 몰두하기도 했고, 날이 밝아 그믐달과 금성과 목성이 푸른 하늘의 밝음 속으로 다 사라질 때까지 함께 별을 보기도 했다.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의 누리집(astronomy2009.kr)에서는 젊은 시인들이 별과 우주를 소재로 창작한 시를 연재했는데 천문학자가 시에 천문학적 단상을 붙이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별 시’를 낭독하는 시 낭독회도 열 예정이다. 과천국립과학관에서는 음악가들과 함께 준비한 ‘스페이스 뮤직 쇼’를 열고 있다. 모두들 즐겁고 유익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과학과 예술의 작은 소통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외국 학회에 참가하며 느낀 부러움이 조금은 가셨다.
문제는 이런 작은 시도들이 어떻게 미래지향적이고 지속적인 작업으로 자리 잡느냐 하는 것이다. 모두들 융합을 이야기했다. 융합을 실현하려면 먼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결국 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과학과 기술과 인문과 예술이 학교 현장에서 먼저 만나야 한다. 서로 존중하고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융합이 실현될 수 있도록 놀이판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희망의 불씨를 갖고 다시 돌아본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이상적 융합에 가장 접근한 교육과정을 시행하려던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역주행에 현기증이 난다.
이명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4/0116/53_17053980971276_2024011650343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32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76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807.jpg)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original/2025/0212/20250212500150.webp)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original/2025/0211/20250211502715.webp)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original/2025/0211/20250211503664.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