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대규모 제조업체의 파업 현장을 취재할 때 노동자들한테 “무식한 소리 좀 쓰지 마라”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파업에 따른 매출 손실에 대한 보도를 두고 한 말이었다. 파업이 끝난 뒤 그들은 실제로 기자의 무식을 입증했다. 마음을 다잡아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생산라인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은 파업 기간의 생산 차질을 이내 만회했다. 자동차나 조선, 전기전자, 기계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은 이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동하면 생산성을 쉽게 끌어올린다. ‘사람 중심 경영’, ‘신바람 경영’이 그토록 강조되는 이유다.
비정규직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여당, 경영계 일부는 이 법의 사용기간 2년 제한 조항이 7월1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바람에 대량 실직 사태가 우려된다며 1~2년 시행 유보를 주장한다.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 여건 악화라는 상황 논리도 덧붙인다.
하지만 이런 주장과 논리는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2006년 말 제정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시정’을 목적(제1조 1항)으로 하고 있다. 같은 일터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고용계약 조건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상과 대우가 현격하게 차이 나는 현상을 고치자는 뜻이었다. 법 제정 당시 노동부는 “입법이 지연될수록 불합리하게 차별받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게 됩니다”라며 대대적인 국정광고도 펼쳤다. 그만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해소를 시급한 과제로 여겼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사회적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경제발전에도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선 비정규직 채용이 단기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좀더 길게 보고 나라 경제 전체를 고려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비용이 훨씬 더 많다. 사회적 갈등이 빚는 손실과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는 ‘가난한 취업자’에 대한 구제비용 등을 계산하면 득실이 쉽게 나온다.
이처럼 개별적 효용의 총합보다 사회적 손실이 더 큰 경우를, 경제학 교과서는 ‘부정적 외부효과’(외부 불경제)라 하고 정부가 적극 나서 치료하도록 권유한다. 굳이 경제이론을 들먹이지 않고 상식으로 물어보자. 차별 받아 서러운데다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한 사람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제가 온전하게 굴러갈 수 있나?
경영계에서도 비정규직 의존을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직원들이 조직을 신뢰하고 자기 일에 몰입해야 하는데, 비정규직한테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경험에서 나온 시각이다. 그래서 금융이나 유통, 특히 현장 작업자들의 숙련도가 제품 품질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제조업에선 ‘경영적 판단’에 따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많이 옮겼다.
노동사회연구소 집계로는, 비정규직법 제정 뒤 2년간(2007년 3월~2009년 3월) 전체 비정규직 수가 40만명 줄어든 대신 정규직 수는 72만명 증가했다. 사용기간 2년 제한 조항의 발효를 앞두고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해왔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70만 고용대란’설을 내세워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변한다. 정작 대란설의 과장이 드러나자 “비정규직에서 단 한 명의 실직자도 발생해선 안 된다”며 개정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개선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정부·여당이 마치 ‘비정규직의 백기사’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비정규적 논리로 어떻게 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겠나?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sbpark@hani.co.kr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70만 고용대란’설을 내세워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변한다. 정작 대란설의 과장이 드러나자 “비정규직에서 단 한 명의 실직자도 발생해선 안 된다”며 개정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개선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정부·여당이 마치 ‘비정규직의 백기사’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비정규적 논리로 어떻게 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겠나?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sbpar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