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그가 갑자기 유명해졌다. 그의 이름 석 자를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국회 부의장은 그다지 존재감이 있는 자리는 아니다. 이번 언론법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투표 종료를 선언했다가 다시 표결을 실시한 한나라당쪽 부의장 이윤성 의원이다.
이제 4선의 중진인 그에게 지워지지 않는 인상이 남아 있다. 1992년 초 나는 한겨레신문사의 특파원으로 임지인 도쿄에 갔다. 출입처에서 자주 마주쳤던 타사의 기자들이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그중 몇 사람하고는 가까운 사이였다. 겨우 숨 돌릴 만한 상태가 됐을 때 몇 사람이 조언을 해주었다. 특파원단에 가입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호의적이지 않으니 몇몇 선배에게 전화로라도 인사를 하라는 거였다. 나는 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겨레 창간 만 4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도 기성 언론들의 텃세가 남아 있는 현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장 먼저 전화를 해야 한다고 권유받은 사람이 이윤성 의원이다. 당시 그는 한국방송(KBS) 소속이었다. 그가 나의 특파원단 가입에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모른다. 짐작건대 나 개인에 대한 반감보다는 신생 언론, 그것도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는 신문사를 마뜩잖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80년대와 90년대 한국방송에서 뉴스 앵커를 오래 하며 얼굴을 알린 덕에 정계 입문이 순조로웠다. 공교롭게도 그에게 사회봉을 넘겨 험한 일을 하게 한 김형오 의장도 기자 출신이다. 김 의장은 70년대에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동아일보사에서 내는 월간지 <신동아>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이들이 현역 기자로 있을 때 언론의 본분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언론법의 강행처리에 나란히 총대를 멨다.
정부 여당이 엄청난 무리수를 두어가며 언론법을 밀어붙인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미디어의 선진화, 고용 창출 등을 내세우지만 내용을 좁혀 보면 대기업과 보수언론의 방송 진출 길을 연 것이다. 대기업이 투자하면 성숙한 언론과 질 좋은 콘텐츠 생산이 보장될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편집권의 독립이 전반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한국 언론의 풍토에서 거액의 자금을 투자한 개인이나 기업은 공익을 위한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삼성 문제만 나오면 마냥 움츠러드는 중앙일보를 보면 알 수 있다. 현재의 보수언론이 방송시장에 진출해 여론의 다양성을 촉진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이 사임하면서 정부의 인권정책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쏟아낸 것을 보수언론은 거의 묵살했다.
거대 미디어의 탄생이 절대로 좋은 언론을 담보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의 유력신문을 꼽으라고 하면 <아사히신문>을 꼽는 이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시민활동가들에게 물어보면 아사히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의외라 할 정도로 강하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아사히신문 기자들의 한달 봉급이 얼마인지 아느냐고 되묻는다. 그 정도의 생활을 영위하면 사회 밑바닥의 모순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에서도 언론의 빈부격차는 이미 심각하다. 보수신문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메이저 신문과 기타 신문, 중앙언론과 지방언론, 풀뿌리언론은 구성원의 소득 차이만큼 사회를 보는 시각도 격차가 있다. 미디어의 몸집이 거대해진다면 구성원의 시점이 어디로 쏠려갈지는 자명해 보인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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