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 하나없는 생활통지표 충격
아이 생각한다면 귀띔해줬어야 ‘밖에 비 오니까 우산 챙겨’ 학교에 간 녀석이 출근을 앞둔 나에게 보내준 문자다. 밖을 내다보니 가녀린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진다. 녀석은 아마도 비를 맞고 학교엘 갔던가 보다. 그토록 손꼽아대던 방학식이니 비를 맞은들 녀석에겐 무슨 문제가 됐을까. 열두 살, 녀석은 학습능력이 뛰어나거나 매사에 똑 부러지는 것도 없고 공부에 대한 치열한 경쟁심도 없다. 그래서 시험을 치면 늘 그 자리 보통 수준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키웠다. 남들 다 다니는 영어학원도 안 다닌다. 그 흔한 학습지 하나 하지 않는다. 다니는 학원이라곤 올해 들어 첨으로 등록한 수학학원과 독서클럽이 전부다. 일상에서 좀더 주도적이길 바란 마음에 그 어떤 것도 녀석과 합의하에 결정지었다.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고학년인데도 띵가띵가 시간이 많다. 몇 해 전만 해도 녀석의 꿈은 어부였다. 세상에서 제일 큰 물고기를 잡는 게 소원이라 했다. 무슨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은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어부가 꿈이라고 했는지. 지금은 프로게이머가 꿈이라고 한다. 아마도 스타크래프트에 미쳐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나는 녀석이 어떤 꿈을 갖고 있고,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 결정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스로 정한 일에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일을 신나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뒤따를지는 미지수지만. 얼마 전 방학과 함께 받아 온 녀석의 생활통지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행동특성란에 아이의 장점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고 모든 게 문제투성이였다. “친구들과 다툼이 간혹 발생하며 자신의 불만을 거친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급식시간 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 골고루 먹도록 해야겠습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인터넷중독 검사 결과 고위험군으로 나왔습니다. 가정에서 지도가 있어야겠습니다.”
교사의 눈에 이토록 ‘문제아’였다면 한 학기 동안 왜 담임은 한 번도 학부모인 내게 상담을 요구해 오지 않았을까. 내 아이의 문제점 인식보다 우선적으로 담임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물론 학교에서 교사가 보는 관점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정도 이상의 문제점이 있고(학부모가 모르는) 진정으로 아이의 발전을 바라는 교사라면 개선점을 찾기 위해 면담을 요구해 왔어야 옳았다. 면담이 불편하다면 전화 한 통이라도, 전화마저도 불편하다면 쪽지로라도 학부모인 내게 아이의 문제점을 귀띔해 주었어야 했다. 몰아두었다가 통지표에 통보해 주는 게 교사의 책무가 아니질 않은가. 친구들과 다툼 중에 거친 행동이란 게 어느 정도인지(내 아이는 반에서 키가 제일 크다) 작년에 한 녀석과 싸워 얼굴이 손톱에 긁혀 만신창이가 되어 닷새 동안 병원치료를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내 아이 얼굴을 그 지경으로 만든 아이는 말짱했다. “사내가 싸우는 데에 힘을 쓰는 건 제일 못난 짓이다”라며 나는 녀석에게 폭력적이지 않기를 세뇌시켰는데 그 거친 행동이란 게 뭐였을까. 편식이 심하다는 건 안다. 채소를 무지 싫어한다. 채소 빼곤 가리지 않기에 좀더 자라면 저절로 고쳐질 것이라 여기고 문제 삼지 않았다. 기특하게도 녀석은 청량음료도 좋아하지 않고 사탕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충치 하나 없다. 그나저나 가장 큰 문제가 인터넷 중독 고위험군이란다. 요즘 세상에 게임 싫어하는 아이가 어딨을까. 닌텐도도 없는 녀석이 토요일 일요일에만 컴퓨터 사용을 하는데, 하긴 사용 빈도보다 정신줄을 온통 게임에 쏟아붓고 있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그 검사를 어떤 방식으로 언제 했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가정에서 어떤 식의 지도를 해야 하는지? 무조건 컴퓨터를 멀리하게 하는 것만 능사가 아니잖은가. 대안은 없고 지적만 가득하다. 학교에선 이러이러하니 학부모도 제대로 알고 있으라는 친절한 지적들. 이것이 이 땅의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도대체 학교교육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사람에겐 단점만 있는 게 아니다. 관심을 갖고 보면 이쁜 점도 보이기 마련이다. 평생을 지니게 될 통지표에 아이의 장점 하나 발견해서 적어주지 못하는 교사에게 다시 한 학기를 맡길 생각을 하니 아득하다. 내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제일 흥미롭게 여기게끔(학교 가는 게 너무도 싫다 한다) 그런 인식의 전환을 갖게 해 줄 진정한 교사를 만나는 일은 로또를 맞는 일만큼 대박이 되는 행운일까. 이 땅에는 코흘리개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으로 묵묵히 지도하는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많을 것이다. 스승의 날에 달려가 꽃 한 송이 달아드리고픈 고마운 스승도 많을 것이다. 교사의 한마디에 학교생활이 달라졌고 그리하여 꿈이 달라지고 인생의 목표가 달라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교사는 등대와도 같은 존재다.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으로 길을 안내하며 좌초되지 않도록 돕는 생의 조력자 같은 것. 어찌 교과 학습지도에만 그 업무가 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시험 점수 더 올리는 게 초등학교 교육의 목표가 아니잖은가. 허후남/울산 남구 신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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